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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況又油灰築底, 堅如金石, 風雨不仆, 勢由然矣。 島上則不然, 海潮外囓, 山水內匯, 夏潦之際, 汎濫蕩潏, 城在山上, 水滲城隙, 其善崩, 亦勢使然也。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江華府留守趙鼎鎭啓: “卽者濟物鎭吏來告: ‘當日申時, 內官金錫福, 來波甲串渡。’ 云。 故卽使本府經歷往問, 則以爲: ‘奉傳敎, 率䄄來到文殊山城,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山城別將所報, 則以爲: ‘逆䄄一行, 有屋轎子四, 草轎子一, 別坐魯元秋領率來到山城。’ 云。 罪人島置, 何等嚴重? 而初無王府之公文, 又無都事
    출처전거正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孔愉也, 捍錢塘而築之堤, 浚廣德而疏其隘, 則唐之白居易任侗也. 周因宰於奉化, 而□濟先濬, 陳渾令於餘杭, 而南海以鑿. 諸賢相機, 各以意會,
    출처전거江都志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304]鄭頤亨妻金氏[居仙源. 與姑宋氏同溺死. 人謂, 奕世貞烈. 而啓聞無回啓. 今其子爲蔭仕.] 族親衛沈廷瑊妻崔氏[匿於摩尼巖穴中, 被捉曳出曰
    출처전거江都志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死於南陽, 非所與論於江都之立祠, 而以其外鄕之故相議幷入. 其時亦有未妥之論云. 難免混入之失. 中軍黃善身以本土之人. 當敵兵渡海之時, 主將摠舟師
    출처전거江都志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鎭海寺[在甲津西岸. 辛未年, 自本府募僧, 化主三十二名, 始役, 壬申畢役後, 爲禁衛營所管, 營建庫舍, 藏置餉穀與軍器, 專使僧徒守之. 又置捴攝使,
    출처전거江都志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三千里而解者. 誠於平時預爲採乾且貿砒礵, 以毒於陽川以西之地, 則三面皆海也, 豈非天作之地乎. 山海關外義院口地方通計四五千里, 及寧夏大同宣府等九
    출처전거江都志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告由, 同時行事, 則不可不一體設奠, 而祭文亦依所奏, 使之撰進。” 御營大將尹趾完曰: “江華留守李敏叙請城白馬、文殊、鎭江三處, 長峰、注文二島,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010402]江都門戶。 蓋白馬則在於昇天津, 似非要害, 而文殊則高峙甲津, 臨壓江都, 必有城, 可以固江都。 且流澌滿江之時, 賊若猝至, 則前有
    출처전거肅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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