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1,545,556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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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머물면서 병을 조리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12월 4일 을유, 흐림. ○집에 머물면서 병을 조리했다. ○휘(煇)가 수손(守孫)‧야차(夜叉) 등에게 송엽즙(松葉汁)을 짊어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면서 병을 조리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12월 3일 갑신, 맑음. ○집에 머물면서 병을 조리했다. ○노(奴)와 말을 산소에 돌려보내자 아내가 기성(箕星)에게 타고 나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보낼 편지를 써서 막금(莫金)이 서울로 돌아가는 편에 부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0월 30일 기미, 맑고 저물어 흐림. ○집에 보낼 편지를 써서 막금(莫金)이 서울로 돌아가는 편에 부쳤다. 또 곶감 8첩(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서 밥을 재촉해서 먹고 출발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8월 28일 임인, 잠깐 비가 내림. ○집에서 밥을 재촉해서 먹고 출발했다. 심촌(椹村) 사우(士遇)의 집으로 갔더니 송사일(宋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참군(參軍) 댁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윤3월 26일 임신, 가뭄이 혹심함. ○참군(參軍) 댁에 머물렀다. 아침에 다시 올라가 만나서 부채와 붓 싼 꾸러미 1개를 드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창지(昌之)가 아침 일찍 왔고, 득전(得荃) 등도 와서 함께 두부적[泡炙]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8월 19일 계해, 흐리고 비가 뿌림. ○창지(昌之)가 아침 일찍 왔고, 득전(得荃) 등도 와서 함께 두부적[泡炙]을 먹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천장(天章)의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1월 12일 기축, 맑고 바람 붊. ○천장(天章)의 집에 머물렀다. 저녁때 우가(寓家)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이사겸(李士謙)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천장(天章)의 집에 유숙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6월 23일 갑술, 잠깐 비가 내림. ○천장(天章)의 집에 유숙했다. 일찍 일어나 죽을 먹고, 술지(述之)‧언장(彦章)과 함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천장(天章)의 집에서 함께 길을 나서 저녁에 대둔사(大芚寺)에 도착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1월 11일 무신, 맑음. ○천장(天章)의 집에서 함께 길을 나서 저녁에 대둔사(大芚寺)에 도착했다. ○새벽에 일어나 빗질하고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천장(天章)의 집으로부터 이사겸(李士謙)의 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고 저녁때 우가(寓家)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1월 13일 경인, 눈비가 내리고, 신시(申時)의 한가운데에 입춘절에 들어감. ○천장(天章)의 집으로부터 이사겸(李士謙)의 집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천택(天澤)이 친구 유생과 여암(呂岩)을 방문하고 인박(仁博)의 집에서 머물며 책을 읽었다고 한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5월 8일 신축, 맑음. ○천택(天澤)이 친구 유생과 여암(呂岩)을 방문하고 인박(仁博)의 집에서 머물며 책을 읽었다고 한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청리(廳吏) 전억년(田億年)이 공함(公緘)을 가져와서 보여주었는데, 답함(答緘) 초안을 가지고 사복정(司僕正) 댁에 가서 여쭈어 정하여 써 올릴 것이라 한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23일 병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붊. ○청리(廳吏) 전억년(田億年)이 공함(公緘)을 가져와서 보여주었는데, 답함(答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청리역(淸里驛)에서 이른 아침밥을 먹고 출발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1월 25일 병진, 청명하여 구름 한 점이 없음. ○청리역(淸里驛)에서 이른 아침밥을 먹고 출발했다. 행차가 안곡역(安谷驛)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청명절(淸明節)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2월 25일 병신, 흐리고 바람 붊. ○청명절(淸明節)이다. ○당(堂)에 머물렀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천택(天澤)이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청파(靑坡)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9월 15일 을해, 맑음. ○청파(靑坡)에 머물렀다. ○염(爓)의 처가 왔고 두 아이도 따라 왔기에, 만나봤더니 너무 불쌍하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청파에 머물면서 배소(配所)가 정해지기를 힘들게 기다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9월 14일 갑술, 맑고 춥고 얼음이 얾. ○청파에 머물면서 배소(配所)가 정해지기를 힘들게 기다렸다. 몸이 쇠약해서 지탱하기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초9일에 산릉으로 행행(行幸)하고자 하여 조정에서 무리하지 말도록 계청하자 억지로 따랐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6일 기해, 맑고 따뜻함. ○초9일에 산릉으로 행행(行幸)하고자 하여 조정에서 무리하지 말도록 계청하자 억지로 따랐다. 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최우(崔祐)의 집으로부터 성주(星州)의 우가(寓家)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30일 을사, 소나기가 내리다가 바로 그치고 가뭄. ○최우(崔祐)의 집으로부터 성주(星州)의 우가(寓家)로 돌아왔다. ○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축시(丑時)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부모님 양위(兩位)에 시사(時祀)를 올리고, 겸하여 큰 형님과 큰 형수님 양위도 설치하여 함께 제사를 드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2월 25일 정축, 맑음. ○○○축시(丑時)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부모님 양위(兩位)에 시사(時祀)를 올리고, 겸하여 큰 형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축시(丑時)에 삭제를 친히 행하셨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1일 계해, 맑음. 계춘(季春) 3월 큰달 경진 ○○축시(丑時)에 삭제를 친히 행하셨다. 아헌관(亞獻官)은 영의정 윤(尹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축시(丑時)에 오우제(五虞祭)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16일 기유, 맑고 낮에 바람이 심하게 붊. ○축시(丑時)에 오우제(五虞祭)를 지냈다. ○몸이 아파 제사를 배행하는 데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축시(丑時)에 육우제(六虞祭)를 행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18일 신해, 맑음 ○축시(丑時)에 육우제(六虞祭)를 행했다. ○승문원(承文院)에서 숙직하고, 이른 아침밥을 먹은 후에 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축시(丑時)에 칠우제(七虞祭)를 친히 행하셨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19일 임자, 바람 불고 약간 흐림. ○○축시(丑時)에 칠우제(七虞祭)를 친히 행하셨다. 3경3점(三更三點)밤 12시경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축시(丑時)오전 1시에서 3시 사이에 사우제(四虞祭)를 행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14일 정미, 청명함. ○축시(丑時)오전 1시에서 3시 사이에 사우제(四虞祭)를 행했다. 백관이 배제(陪祭)하였는데, 좌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축시(丑時)오전 1시에서 3시 사이에 삼우제(三虞祭)를 행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12일 을사, 밤에 비가 내리고 종일 그치지 않음. ○축시(丑時)오전 1시에서 3시 사이에 삼우제(三虞祭)를 행했다. 백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축시(丑時)오전 1시에서 3시 사이에 한식제(寒食祭)를 지내고 겸하여 망제(望祭)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15일 무신, 달 무리 지고 흐림. ○축시(丑時)오전 1시에서 3시 사이에 한식제(寒食祭)를 지내고 겸하여 망제(望祭)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축시에 이우제(二虞祭)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10일 계묘, 맑음. ○축시에 이우제(二虞祭)를 지냈다. 초헌관(初獻官)은 영의정 윤인경(尹仁鏡)이고, 아헌관은 우의정 성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출근하지 않고 몸을 조리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20일 계축, 흐리다 맑음. ○출근하지 않고 몸을 조리했다. 식후에 운경(雲卿) 영공을 뵈러 갔다. 또 박사(博士)의 집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출근하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19일 정묘, 가뭄. ○출근하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 낮에 의관(醫官) 문세련(文世璉)이 왔기에 백회(百會)‧견우(肩髃)‧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출근하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12일 경신, 가뭄. ○출근하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 ○지방(止方)이 나의 판자(板子) 5개를 쓰고, 남은 2개를 내려 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출근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16일 갑자, 가뭄. 월식이라고 함. ○출근하지 않았다. 정오 무렵 전라도 관찰사를 전별하러 동대문 밖에 갔다. 사간‧대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출근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14일 임술, 가뭄. ○출근하지 않았다. 밥을 먹은 후에 가서 연안(延安) 숙모를 알현하고 제옹(濟翁)을 만났다. 채영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치재(致齋)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1월 4일 갑신, 흐리다가 다시 눈이 내림. ○치재(致齋)했다. 휘(煇)‧염(焰)‧국주(國柱) 등이 함께 있었다. ○김의중(金毅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큰 누님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1월 12일 계묘, 맑음. ○○큰 누님의 기일이다. 제사를 차려서 천택(天澤)과 함께 지냈다. ○당(堂)에 머물렀다. ○아내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탄핵되어 머물러 있느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2일 갑오, 매우 가뭄. ○탄핵되어 머물러 있느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아내가 장(醬)을 담갔다. ○괴산(槐山)의 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태용(太容)은 출근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10일 갑진, 흐리다 맑고 저녁에는 따뜻함. ○태용(太容)은 출근하지 않았다. 응명(應明)의 관아사복시(司僕寺)에서 낮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태용(太容)이 답함(答緘)으로 항거하려고 하자 응명(應明)이 따랐으므로 나도 허락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24일 정사, 맑다가 흐림. ○태용(太容)이 답함(答緘)으로 항거하려고 하자 응명(應明)이 따랐으므로 나도 허락했다. ○중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태평관에서 천사(天使) 연향(宴享)의 습의(習儀)를 하므로 밥을 먹은 후 모두 모인 곳에 나가 참석했으나, 도제조(都提調)는 곧바로 대청(大廳)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19일, 신해, 가뭄. ○태평관에서 천사(天使) 연향(宴享)의 습의(習儀)를 하므로 밥을 먹은 후 모두 모인 곳에 나가 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태화(○太和) 서간(書簡)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태화가 김참봉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주신 소식을 잘 받았다고 하며 울산에 사는 친척의 안부를 전했다. 어물(魚物) 일부를 보내니 받아서 반찬감으로 사용하라고 했다.내용분류개인-생활-서간 | 형식분류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현소장처한국국학진흥원
- ○통동(通洞)에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26일 을미. ○통동(通洞)에서 돌아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파루(罷漏)매일 새벽 5경 3점(五更三點)에 큰 쇠북을 쳐서 도성의 통금(通禁)을 해제하던 일 시간에 의관을 갖추고 응명(應明)과 한(韓) 동지(同知)를 따라 올라가 망전(望奠) 상(床)을 살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15일 기유 상원(上元), 맑고 밤에 잠깐 눈이 내림. ○파루(罷漏)매일 새벽 5경 3점(五更三點)에 큰 쇠북을 쳐서 도성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팔물탕(八物湯)에 약재 더 넣은 것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2월 10일 을축, 맑고 추움. ○팔물탕(八物湯)에 약재 더 넣은 것을 먹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손자가 아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팔물탕(八物湯)에 약재 더 넣을 것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2월 11일 병인, 맑고 몹시 추움. ○팔물탕(八物湯)에 약재 더 넣을 것을 먹었다. 오른쪽 손의 마비가 날로 심해 손이 굳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팔물탕(八物湯)에 약재 더한 것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2월 9일 갑자, 바람이 불고 추웠다가 맑음. ○팔물탕(八物湯)에 약재 더한 것을 먹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팔물탕(八物湯)에 약재 더한 것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2월 7일 임술, 대한이 12월 중기에 듦, 밤이 되자 눈이 쌓이더니 새벽에 크게 바람이 불고 맑음. ○팔물탕(八物湯)에 약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팔물탕(八物湯)에 약재를 더한 것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2월 16일 신미, 약간 흐리고 추위가 조금 풀렸으며, 밤 2경(更)에 월식(月食)이 있었음. ○팔물탕(八物湯)에 약재를 더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팔물탕(八物湯)에 약재를 더한 것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2월 15일 경오, 맑고 추움. ○팔물탕(八物湯)에 약재를 더한 것을 먹었다. 팔이 아파서 힘이 없고 저리기까지 한다. ○손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팔미원(八味元)‧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9월 28일 계묘, 흐림. ○팔미원(八味元)‧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 ○아내가 이곳에 머물렀다. ○길수(吉水)의 말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팥죽을 영좌(靈座)에 올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5년 11월 18일 을해, 동지절, 흐림. ○팥죽을 영좌(靈座)에 올렸다. 술과 과일을 곁들여 예전과 같이 상식(上食)을 올렸다.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평위산(平胃散)‧수중금원(守中金元) 등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10일 기축, 맑음. ○평위산(平胃散)‧수중금원(守中金元) 등 약을 먹었다. 밥을 먹은 후 행랑에 가서 아내와 아이를 보고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평위산(平胃散)에 향유(香薷)를 더한 것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6월 10일 임술, 흐리고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림. ○평위산(平胃散)에 향유(香薷)를 더한 것을 먹었다. 아침에 박인언(朴仁彦)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평위산(平胃散)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6월 11일 계해, 흐리고 비가 흩뿌림. ○평위산(平胃散)을 먹었다. ○정섭(鄭涉)은 《논어(論語)》 공부를 마쳤다. ○숙길(淑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 망전(望奠)을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9년 3월 15일 정해, 맑음. ○하가(下家)에 망전(望奠)을 차렸다. ○아이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아이는 공부하는 것에 마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 머물러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8일 계사, 비가 내림. ○하가(下家)에 머물러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밥을 먹은 후에 올라가 천택(天澤)을 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2일 을유, 맑음.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밤에 당(堂)에서 잤다. ○아침에 내려가 환자를 보니, 밤낮으로 눈을 붙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1일 갑신, 맑음.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근심으로 마음을 졸였다. 밤에 상당(上堂)에서 잤다. ○아침에 내려가 환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0일 계미, 맑고 바람이 붊.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근심이 더욱 심해졌다. ○환자의 기맥(氣脈)이 위급해져서 입으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19일 임오, 맑음. ○하가(下家)에 머물렀다. 근심으로 마음을 졸인 것이 말로 할 수 없으며, 신경을 써서 몹시 괴로웠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 있으며 근심을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16일 기묘, 비가 내고 바람이 크게 붊. ○하가(下家)에 있으며 근심을 했다. ○아픈 아들이 밤에 간혹 입을 벌릴 때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무사(巫祀)를 행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2월 15일 계해, 맑고 가뭄. 남정자(南亭子) 아래에서 성주(星州) 장시(場市)를 열도록 관찰사가 지시했다 한다. 남정자(南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묵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10월 19월 계유, 맑음. ○하가(下家)에서 묵었다. 약을 먹지 않았다. ○숙길(淑吉)의 이질 증세는 아직 다 낫지 않았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30일 을미, 흐림.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저문 후 당(堂)으로 돌아와 거처했다. ○천택(天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9일 갑오, 밤에 비가 내리다 아침에 그치고 낮에 맑음.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밥을 먹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7일 임진, 맑음.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올라가 천택(天澤)을 보았다. ○천택의 기맥이 조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6일 신묘, 맑고 바람이 붊.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술을 마셨다. 올라가 천택(天澤)을 보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5일 경인, 비가 흠뻑 내림.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올라가 천택(天澤)을 보고 저녁에 내려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4일 기축, 바람이 불고 맑음.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공숙(公叔)을 위해서 술과 고기를 먹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2월 23일 무자, 맑고 바람이 붊. ○하가(下家)에서 잤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일찍 올라가서 천택(天澤)의 병을 살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21일 경인. ○하가(下家)에서 잤다. ○이경성(李景星)이 꿩 2마리를 보냈다. ○삼가(三嘉) 현감 류직경(柳直卿)이 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20일 기축. ○하가(下家)에서 잤다. ○정랑(正郞) 육대춘(陸大春)의 부탁으로 성주 관속이 쌀‧콩[太] 각 1섬을 주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19일 무자. ○하가(下家)에서 잤다. ○귀손(貴孫)이 괴산(槐山)에서 돌아왔다. 금손(今孫)이 따라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18일 정해. ○하가(下家)에서 잤다. ○권자효(權子效)가 소 염통[牛心] 1개를 보냈다. ○임(任) 판관이 청어 10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가(下家)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17일 병술. ○하가(下家)에서 잤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루 종일 검은 벼루 갑 깨진 곳을 다시 다듬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4일 병신, 지독하게 가뭄. ○하루 종일 검은 벼루 갑 깨진 곳을 다시 다듬었다. ○남근지(南勤之)에게 푸른 안갑[靑韉]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빈(河濱)에서 백(白) 봉사(奉事)의 집으로 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8월 29일 계묘, 맑음. ○하빈(河濱)에서 백(白) 봉사(奉事)의 집으로 갔다. ○판관이 아침에 의령(宜寧) 현감을 초대했는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빈(河濱)에서 성주(星州)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9월 2일 을사, 맑다가 안개 낌. ○하빈(河濱)에서 성주(星州)로 돌아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재촉해서 먹고 해가 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빈(河濱)으로부터 성주 관내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3월 5일 신사, 크게 가물고 바람 붊. ○하빈(河濱)으로부터 성주 관내로 돌아왔다. ○주인이 청하여 말하기를, “부사의 행차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하빈(河濱)의 역자(驛子) 집에서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2월 23일 계축, 맑고 바람 붊, 아침에 서리가 내리고 매우 추움. ○하빈(河濱)의 역자(驛子) 집에서 잤다. 방 벽에 틈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한밤중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파루(罷漏) 후에 노원(盧原)으로 나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17일 병인, 맑다가 안개가 낌. 한식(寒食). ○한밤중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파루(罷漏) 후에 노원(盧原)으로 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한성부판관 정경중(鄭敬仲)이 보낸 차부(車夫)‧색장(色掌) 등이 곽판(槨板)을 실으러 왔기에 술을 먹이고, 콩[太] 1말, 목면 1필을 주어 보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1월 22일 무인, 흐림. ○한성부판관 정경중(鄭敬仲)이 보낸 차부(車夫)‧색장(色掌) 등이 곽판(槨板)을 실으러 왔기에 술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한세린(韓世麟) 댁에서 성주(星州)의 우가(寓家)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5월 10일 갑신, 가끔 비가 내림. ○한세린(韓世麟) 댁에서 성주(星州)의 우가(寓家)로 돌아왔다. ○밤에 주인과 함께 잤는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머니의 기일(忌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8월 17일 정유, 맑음. ○○○할머니의 기일(忌日)이다. ○당(堂)에서 묵었다. 손자를 돌보았다. ○판관 부인의 지문(誌文)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8월 17일 기사, 소나기가 내리고 흐리고 더움. ○○○할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제(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머니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8월 17일 갑술, 비가 몰려옴. ○○○할머니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사물탕(四物湯)을 먹고 조리했다. 아내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나 제사 차례가 다른 집이라 소식(素食) 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11일 정묘, 맑고 바람이 붊. ○○○할아버지의 기일이나 제사 차례가 다른 집이라 소식(素食) 만 했다. ○내려가 함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0월 11일 경신, 맑음. ○○○할아버지의 기일이다. 재계하고 소식(素食)만 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데, 제사를 다른 댁에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11일 경진. ○○○할아버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판관의 아내가 날홍합[生蛤]‧문어 등의 식품을 보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11일 병진, 밤에 비가 내렸는데 높은 산에는 모두 흰 눈이 쌓이고 아침에는 맑음. ○○○할아버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이어서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10월 11일 을축. 맑다가 흐림. ○○○할아버지의 기일이어서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지냈다. ○당(堂)에 머물렀다. 약을 먹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할아버지의 기일인데, 제사 차례는 매년 다른 집으로 돌아가서 한 차례도 행하지 못했고, 재계하고 소식(素食)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10월 11일 임술, 맑음. ○○○할아버지의 기일인데, 제사 차례는 매년 다른 집으로 돌아가서 한 차례도 행하지 못했고, 재계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4월 6일 경오, 흐리고 동풍이 붊.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군수가 아침 일찍 나와서 점심(點心)을 함께 하고는 바로 사창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4월 5일 기사, 조금 흐리고, 해가 때때로 비치고, 서풍이 붊.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군수가 일찍 나와서 이른 아침밥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4월 4일 무진, 흐림. ○함양(咸陽)에 머물렀다. ○군수 서경(瑞卿)이 아침에 찾아와서 이른 아침밥을 같이 먹고는 바로 사창(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함양(咸陽)에서 안음(安陰)으로 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4월 7일 신미, 맑음. ○함양(咸陽)에서 안음(安陰)으로 갔다.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아침을 기다렸다. 주인이 나와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합천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27일 임인, 맑음. ○합천에 머물렀다. ○노 야찰(也札)이 하초(下焦)에 산병(疝病)배꼽 아래의 복부에 병이 있어 복통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합천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26일 신축, 맑음. ○합천에 머물렀다. 단성 현감 도현보(都鉉輔)를 만났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합천에서 최우(崔祐)의 집으로 갔는데, 도중에 더워서 토하고 설사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28일 계묘, 맑고 더움. ○합천에서 최우(崔祐)의 집으로 갔는데, 도중에 더워서 토하고 설사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9월 4일 신묘, 흐리고 바람 불고 비가 내림.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 숙길(淑吉)도 같이 머물렀다. ○합천(陜川) 현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8월 18일 임술, 맑음.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 ○일찍 일어났는데, 밤잠이 매우 불편했기 때문이다. ○관찰사가 아침 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해인사(海印寺)에 유숙하는 바람에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0월 3일 임자, 맑음. ○해인사(海印寺)에 유숙하는 바람에 약을 먹지 않았다. ○판관이 아침에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식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