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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7월 29일 을사, 맑다가 흐리고 잠깐 비가 내림. ○○○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7월 29일 기유, 가뭄.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7월 29일 을사.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군위(軍威) 현감 박미지(朴眉之)가 쌀 5말‧술 1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7월 29일 을묘, 맑음. ○증조모의 기일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약을 먹었다. ○아내가 이곳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 기일(忌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1월 29일 무인, 약간 흐림. ○○○증조부 기일(忌日)이다. 소식(素食)만 하고 제사는 내 차례가 아니라 지내지 않았다. ○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1월 29일 병오, 흐리고 저녁에는 잠깐 비가 내림. ○○증조부 기일이다. 손(孫)이 제사지낼 차례이므로 간략하게 제사를 차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월 29일 을축, 맑음. ○○○증조부 기일이다. 연안댁(延安宅)에서 제사지낼 차례이다. ○당(堂)에 머물렀다. 소식(素食)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1월 29일 정묘. ○○○증조부 기일이다. ○최손(崔孫)이 꿩 4마리를 바쳤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월 29일 계묘. ○○○증조부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윤대승(尹大承)이 와서 꿩을 주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 기일이므로 재계하고 소식(素食)을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1월 29일 병오, 맑음. ○○○증조부 기일이므로 재계하고 소식(素食)을 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忌)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29일 계해, 우수절, 밤에 눈이 내리고 낮에 비가 내림. ○증조부의 기(忌)□□□□□. 간단하게 서당에서 소사(素祀)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일(忌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월 29일 경오, 흐림. ○○○증조부의 기일(忌日)이다. 우리집[親家]에서 지낼 차례이므로 당(堂)에 제사를 차리고 천택(天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일(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월 29일 무신. ○○○증조부의 기일(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성주(星州) 관아의 창고에서 어제 첩(帖)으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일(忌日)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월 29일 임자, 약간 흐림. ○○○증조부의 기일(忌日)이어서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약을 먹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일이나 제사가 어느 곳에서 행해지는지 알 수 없어 소식(素食)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1월 29일 정해, 맑고 바람이 붊. ○증조부의 기일이나 제사가 어느 곳에서 행해지는지 알 수 없어 소식(素食)만 했다. ○같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1월 29일 정사, 흐림. ○○○증조부의 기일이다. 제사 차례가 친가(親家)여서 제사상을 차려서 지냈다. ○당(堂)에 머물렀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6년 1월 29일 신유. ○○○증조부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9년 1월 29일 신축, 맑음. ○○○증조부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 ○아이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아침과 저녁을 내려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7년 1월 29일 을유. ○증조부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석회(石灰) 32바리[駄]를 산소에 실어갔다고 한다. 귀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부의 기일인데 제사 차례는 다른 집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1월 29일 갑인, 흐리다가 맑음. ○○○증조부의 기일인데 제사 차례는 다른 집이다.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머리에 열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의 제사가 있어 식가(式假)관원에게 주던 규정된 휴가를 낸다고 도감에게 말하고, 기제(忌祭)를 지내기 위해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28일 임술, 흐리고 바람 붊, 얼음이 녹고 비가 내림. ○증조의 제사가 있어 식가(式假)관원에게 주던 규정된 휴가를 낸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증조할아버지의 기일인데 제사순서가 손자이므로 당(堂)에 서 차려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1월 29일 계미, 맑음. ○○○증조할아버지의 기일인데 제사순서가 손자이므로 당(堂)에 서 차려 지냈다. 현배(玄培)가 제사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지난밤에 아내가 구토 증세가 있어 숨이 가쁘고 통하지 않으며 복통이 있음에도 대변을 보지 못하고 힘이 빠지고 위태로워진 후에야 나에게 이야기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2월 4일 무신, 흐리고 비가 내림. ○지난밤에 아내가 구토 증세가 있어 숨이 가쁘고 통하지 않으며 복통이 있음에도 대변을 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지세청(池世淸)이 꼭두새벽에 와서 묻기를, “판관의 아내가 어제 아침에 복통 때문에 소주(燒酒) 4잔을 마시고 곤히 누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6월 17일 기사, 흐리고 비가 잠깐 내림. ○지세청(池世淸)이 꼭두새벽에 와서 묻기를, “판관의 아내가 어제 아침에 복통 때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진시(辰時)아침 7시에서 9시 사이에 계빈전(啓殯奠)빈소에서 관을 꺼낼 때 지내는 제사을 행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윤1월 30일 계사, 맑고 바람 붊. ○진시(辰時)아침 7시에서 9시 사이에 계빈전(啓殯奠)빈소에서 관을 꺼낼 때 지내는 제사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도착해서 당(堂)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11월 14일 무술, 맑고 시원함. ○집에 도착해서 당(堂)에 머물렀다. ○자효(子效)와 같이 장기를 두었다. 주인이 이른 아침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무르며 뜸으로 조섭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29일 정축, 맑고 바람 붊. ○집에 머무르며 뜸으로 조섭했다. ○○○(임금께서)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숭례문 밖 청파(靑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무르며 뜸으로 조섭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27일 을해, 흐리다가 비가 뿌림 ○집에 머무르며 뜸으로 조섭했다. ○두성(斗星)과 규성(奎星)이 다녀갔다. ○류성근(柳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무르며 뜸으로 조섭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26일 갑술, 가뭄. ○집에 머무르며 뜸으로 조섭했다. ○박수(朴燧)와 임정(任禎) 등이 다녀갔다. ○본댁에서 비(婢)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무르며 출입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5일 정묘, 맑고 바람 불며 가뭄의 징조가 있는 듯함. ○(집에) 머무르며 출입하지 않았다. 우리를 추고(推考)하여 조율(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무르며 출입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16일 갑오, 맑음 ○집에 머무르며 출입하지 않았다. 오늘 정사가 있었는데, 전임 대간(臺諫)을 개정(改正)했다고 한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무르며 침을 뜨며 조섭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28일 병자, 흐리다가 잠깐 비가 내림. ○집에 머무르며 침을 뜨며 조섭했다. ○승문원의 서리가 성기(省記)관아에서 숙직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고 출근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10일 무자, 흐리다 맑음. ○집에 머물고 출근하지 않았다. 오후에 흠중(欽仲)의 집에 가서 동네 친구들을 만났는데, 숙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고 출근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13일 신유, 가뭄. 비로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집에 머물고 출근하지 않았다. ○오후에 판결사가 다녀갔고, 저녁에 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21일 임오, 맑음. ○집에 머물렀다. 재계하고 소식(素食)을 했다. ○수렵도(狩獵圖)를 베껴보려 했는데, 몸이 피곤하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16일 정축, 맑고 바람이 붊. ○집에 머물렀다. 몸이 편안하지 않다. ○자공(自公)이 휴가를 받아 갔다. ○곽계손(郭季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14일 을해, 맑음, 입동절(立冬節). ○집에 머물렀다. ○아내가 열이 있고, 몸 상태가 고르지 않다. ○상주(尙州) 목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13일 갑술, 맑음. ○집에 머물렀다. ○아내의 증세가 전과 같다. ○어제 성주 관속 이수억(李壽億)이 서울에서 돌아와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12일 계유, 맑고 안개가 낌. ○집에 머물렀다. ○아내의 열나는 증상이 오래 남아 있다. ○당(堂)에 창호지를 다시 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8일 기사, 맑다가 흐림. ○집에 머물렀다. ○아내의 열나는 증상이 사그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돌석(乭石)의 병이 어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3일 갑자, 맑고 추움, 서리가 내림. ○집에 머물렀다. ○아내의 증세가 조금 그쳤다. ○숙길(淑吉)이 새 저고리[襦衣]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2일 계해, 밤에 비가 내리다 아침에 그침, 바람이 차고 서늘함. ○집에 머물렀다. ○늙은 아내의 열증(熱證)이 전보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9월 29일 신유, 흐리고 저문 후에 비가 내림. ○집에 머물렀다. ○아내가 지치고 열나는 것이 차도가 없다. ○흠중(欽仲)에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9월 28일 경신, 맑다가 흐리고 저문 후에 비가 내림. ○집에 머물렀다. ○아내가 사물탕(四物湯)을 먹었는데, 증세가 노곤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30일 임술, 비가 내림. ○집에 머물렀다. ○양(梁) 도사(都事)가 보리[牟] 2섬‧누룩 2동(同)‧장(醬) 1항아리 등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18일 경술, 말복, 축시(丑時)에 비가 내렸는데, 아주 세차게 내리다가 오후에 흐림. ○집에 머물렀다. ○천택(天澤)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16일 무신, 크게 가물어서 풀과 나무가 다 마름. ○집에 머물렀다. ○여(呂) 좌수(座首)가 햅쌀‧은어 등의 식품을 보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13일 을사, 아주 크게 가뭄. ○집에 머물렀다. ○새벽에 자석을 학질에 걸린 손자의 머리카락에 매어 두고, 쇠스랑을 입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12일 갑진, 크게 가뭄. ○집에 머물렀다. ○아픈 아들의 이질 증세가 그쳤는데, 얼굴이 붉은 것이 열이 있는 것 같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11일 계묘, 크게 가뭄. ○집에 머물렀다. ○사우(士遇)‧경우(景遇)가 이른 아침 향교에 도착해서 사람을 보내 말해주기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10일 임인, 크게 가뭄. ○집에 머물렀다. 배 한가운데가 욱신거리는 증세가 있었다. ○아픈 아들이 대변을 보는 것이 여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9일 신축, 가물고 바람이 붊. ○집에 머물렀다. 손자의 학질이 걱정이다. ○아들이 작약탕(芍藥湯)을 먹고는 설사하는 횟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8일 경자, 가물고 흐림. ○집에 머물렀다. ○적옹(積翁) 영공이 중택(仲擇)과 아침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바로 심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7일 기해, 크게 가뭄. ○집에 머물렀다. 더위로 괴로웠다. 아침밥과 저녁밥을 먹지 않고, 죽만 먹었다. 아침에 향유산(香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6일 무술, 흐리고 가뭄. ○집에 머물렀다. ○○장인[聘君]의 기일이어서 간략하게 밥과 국을 차리고 먼동이 틀 무렵 제사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5일 정유, 크게 가뭄. ○집에 머물렀다. 내려가 처자식을 보았다. 함께 악비(岳飛) 씨의 죽음을 슬퍼했다. 세 딸이 아직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4일 병신, 크게 가뭄. ○집에 머물렀다. 더위에 지쳐서 의관을 벗고 누웠다. ○아픈 아들이 오령산(五苓散) 반(半) 복(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3일 을미, 크게 가뭄. ○집에 머물렀다. 아침에 목사청에 올라가 목사를 만나니, 초9일에 사직하고 돌아가는 것이 정해졌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7월 2일 갑오, 가물고 더움. ○집에 머물렀다. ○아픈 아들의 증세가 어제와 같고 심해지지 않았기에, 오령산(五苓散)에 우황(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9일 임진, 가물고 덥고, 오후에 천둥이 치고 찬비가 두 차례 내리다가 곧 그침. ○집에 머물렀다. ○숙길(淑吉)이 열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8일 신묘, 맑고 가물 징조가 있음. ○집에 머물렀다. ○아들의 증세가 변화가 없다. 이른 아침에 오령산(五苓散) 반(半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7일 경인, 가뭄. ○집에 머물렀다. ○합천(陜川) 군수 적옹(積翁)이 들렀다가 돌아갔는데, 인마(人馬)를 보내면 겉보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6일 기축, 맑음. ○집에 머물렀다. ○내려가 환자를 보았는데, 새벽에 오령산(五笭散) 반(半) 복(服)에 우황(牛黃)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5일 무자, 맑음, 가물 조짐이 있는 것 같음. ○집에 머물렀다. ○환자가 저문 후에 계속 자다가 아침에 일어났기에, 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6월 24일 정해, 맑음. ○집에 머물렀다. ○환자가 밤부터 지쳐 잠들어서 사시(巳時)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까지 깨지 않았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29일 정미, 흐리다 맑았고 저문 후에는 비가 내림. ○집에 머물렀다. □이 이조 좌랑이 제수되었다고 한다. ○언경(彦卿)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24일 임인, 밤에 비가 내리다가 낮에 그침. ○집에 머물렀다. 식후에 흠중(欽仲)을 만나러 갔다. 동료[同官] 조관(趙琯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21일 기해, 흐리고 천둥 침. ○집에 머물렀다. 이부장(李部將)이 다녀갔다. ○양동(梁同)이 □□□ 망종(芒終)을 데리고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20일 무술, 맑음. 유월절, 소서(小暑). ○집에 머물렀다. 하혈이 그치지 않는다. ○노원(盧原)의 안무작(安無作)이 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19일 정유, 비가 내리다가 낮에 그침. ○집에 머물렀다. 약을 먹지 않았다. 하혈이 그치지 않는다. ○장인(丈人)의 사당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18일 병신, 비가 내림. ○집에 머물렀다. 추고(推考)에 답변하면서 죄를 자복했다. ○덕평(德平)과 죽주(竹州) 등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17일 을미, 맑음. ○집에 머물렀다. 추고(推考)에 대한 답변은 상기부(尙起夫) 상기부(尙起夫) : 起夫는 尙震(1493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24일 임신, 흐림. ○집에 머물렀다. 한낮에 다시 뜸으로 풍혈(風穴)을 다스리고자 백회(百會)와 대계(大谿) 등의 혈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22일 경오, 흐림. ○집에 머물렀다. 류공보(柳公輔)‧강대로(姜大老)와 장기를 두었다. 최언경(崔彦卿)도 들렀는데, 오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14일 계사, 맑고 바람이 붊. ○집에 머물렀다. 기운이 아주 없어서 수중금원을 먹었다. 아내도 병에 차도가 없어서 연이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13일 임진, 맑음. ○집에 머물렀다. 수중금원(守中金元)만 먹었다. 아내는 뼈의 통증과 대하(帶下) 때문에 반총산(蟠蔥散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11일 경인, 맑음. ○집에 머물렀다. 약을 먹었다. 기력(氣力)이 아주 떨어졌다. ○아내는 요사이 허리‧다리의 통증과 백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5일 갑신, 맑음. ○집에 머물렀다. 몸에 피로한 증세가 있어 아주 편치 않다. 이호(而浩)의 편지에 답장을 하고 아울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4일 계미, 맑음. ○집에 머물렀다. 이웃의 손님과 장기를 두었다. 이순정(李順貞)이 왔다가 먼저 가고, 류윤필(柳潤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28일 정축, 비가 내림. ○집에 머물렀다. 감기를 앓고 있다. ○임정(任楨)이 다녀갔다. ○염(爓)이 보러 왔다. 저녁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27일 병자, 밤에 비가 내리더니 종일 퍼붓듯 내림. ○집에 머물렀다. 한 일이 없다. 휘(煇)가 이곳에 머물렀다. ○연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26일 을해, 흐림. ○집에 머물렀다. 올라가 도사(都事)를 보았다. 집 뜰에 살구꽃은 이미 떨어지고 복숭아꽃이 피려고 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24일 계유, 맑음. ○집에 머물렀다. ○당진관(唐津官)과 결성관(結城官) 등에 편지를 보내 금금이(今金伊)를 보내서 필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23일 임신, 흐림. ○집에 머물렀다. 말을 보내 이갑(李甲)을 맞이하여 지리(地理)와 점괘에 대해 물었다. 마주앉아 조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21일 경오, 비가 내림. ○집에 머물렀다. 한 일이 없다. 저녁을 먹은 후 열지(說之)를 만나러 갔는데 기력은 약하고 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20일 기사, 흐림. ○집에 머물렀다. 류윤필(柳潤弼)을 초대해서 종일 장기를 두었다. ○휘(煇)는 황치손(黃致孫)의 표석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19일 무진, 맑음. ○집에 머물렀다. ○휘(煇)가 서울로 돌아왔다. ○제옹(濟翁) 형이 보러 왔고, 민(閔) 참군(參軍)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18일 정묘, 맑음. ○집에 머물렀다. ○최언경(崔彦卿)이 다녀갔다. ○정언(正言) 이희손(李希孫)이 다녀갔다. ○야차(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16일 을축, 맑음. ○집에 머물렀다. ○휘(煇)가 보러 왔다가 이어 노원(盧原)으로 나갔는데 한식(寒食) 제사 때문이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13일 임술, 맑음. ○집에 머물렀다. ○본댁의 노 계동(季同)이 와서 보은(報恩) 현감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하기에 써주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1월 29일 기유, 흐리다 맑음. ○집에 머물렀다. 오후에 발과 아랫도리를 씻었더니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아침을 먹은 후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8월 13일 정사, 맑음. ○집에 머물렀다. 여독 때문에 피곤하여 소식(素食)을 하지 못했다. 관찰사가 만나자기에, 성주 관아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며 병을 조리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7일 병술, 맑음. ○집에 머물며 병을 조리했다. 저물녘에 아랫도리를 씻었다. 재계하며 머물렀다. ○휘(煇)는 내일 제사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며 병을 조리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6일 을유, 맑음. ○집에 머물며 병을 조리했다. 휘(煇)와 함께 사냥놀이[大獵戱] 몇 판을 했다. 이질을 앓아서 수자목향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며 병을 조리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3일 임오, 맑음. ○집에 머물며 병을 조리했다. ○조헌조(趙憲祖)가 다녀갔다. ○두성(斗星)과 기성(箕星)이 본가에 가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며 병을 조리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2일 신사, 맑음. ○집에 머물며 병을 조리했다. ○두성(斗星)‧응정(應挺)이 함께 왔다가 응정은 갔다. ○박성량(朴成樑)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며 재계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29일 임술, 맑고 따뜻하며 남풍이 불다가 저녁에는 흐림. ○집에 머물며 재계했다. 신시[晡時]에 예궐하였는데, 삭제(朔祭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며 출근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5월 11일 기축, 맑음. ○집에 머물며 출근하지 않았다. 홍문관 소속 전원이 의논하여 승정원에 가서 계(啓)를 올리기를, “양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며 출입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10일 임신, 맑음. ○집에 머물며 출입하지 않았다. 몸이 고단하여 오래 누워있었다. ○안충(安忠)이 와서, 그 사위 연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집에 머물며 출입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24일 계묘, 흐림. ○집에 머물며 출입하지 않았다. 동네 친구 류윤필(柳潤弼)‧이사(李汜)‧채장손(蔡長孫) 등이 보러 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