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1,545,556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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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명(應明)에게 구종(丘從)을 빌려 식전에 윤(尹) 형조 판서를 찾아갔으나, 만나기를 꺼려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12일 갑진, 가뭄. ○응명(應明)에게 구종(丘從)을 빌려 식전에 윤(尹) 형조 판서를 찾아갔으나, 만나기를 꺼려했다. 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응명(應明)의《주자대전(朱子大全)》을 돌려보내면서, 또 작별시 1율을 주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16일 무신, 가물고 바람이 불고 저녁에 잠깐 비가 내림. ○응명(應明)의《주자대전(朱子大全)》을 돌려보내면서, 또 작별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의령(宜寧) 현감‧창녕(昌寧) 군수 등에게 옻[漆]을 구하는 편지를 써서 도사(都事) 김순지(金醇之)에게 주어 전해달라고 청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3월 4일 기미, 흐리고 가랑비가 내림. ○의령(宜寧) 현감‧창녕(昌寧) 군수 등에게 옻[漆]을 구하는 편지를 써서 도사(都事)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의성(義城)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8일 갑인. ○의성(義城)에 머물렀다. 의성(義城) 현령이 나에게 기름‧개가죽으로 만든 신[靴] 1사(事)를 주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의성(義城)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7일 계축. ○의성(義城)에 머물렀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의성(義城)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6일 임자. ○의성(義城)에 머물렀다. 빙산(氷山)에 가보았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의성(義城)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4일 경술. ○의성(義城)에 머물렀다. 기제(忌祭) 때문에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의성(義城)에서 군위(軍威)로 가서 묵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18일 갑자. ○의성(義城)에서 군위(軍威)로 가서 묵었다. 박(朴) 군위(軍威) 현감이 상지(常紙) 5속(束)을 주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의성(義城)에서 쉬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17일 계해. ○의성(義城)에서 쉬었다. ○의성(義城) 현감 안계용(安季容)이 백미 10말‧메밀[木米] 5말‧기름 1말‧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의성(義城)에서 안동(安東)으로 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9일 을묘. ○의성(義城)에서 안동(安東)으로 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의성현(義城縣)으로 행차해서, 상방(上房)에서 묵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3일 기유. ○의성현(義城縣)으로 행차해서, 상방(上房)에서 묵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른 아침밥[早食]을 먹은 뒤 태평관(太平館)에 나갔으나 너무 일러 모이지 않기에 응명(應明)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10일 임인, 잠깐 비가 내리다가 그침 ○이른 아침밥[早食]을 먹은 뒤 태평관(太平館)에 나갔으나 너무 일러 모이지 않기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른 아침밥을 먹고 동이 트자 출발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0월 19일 병술, 맑고 바람 불며 추움. ○이른 아침밥을 먹고 동이 트자 출발했다. 오현(鼯峴)을 넘어 약목현(若木縣)에 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른 아침밥을 먹고 선산(善山) 호지내(狐池內)의 송천장(宋天章)의 집으로 가서 묵었는데, 연방(蓮榜)의 방회(榜會) 때문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1월 10일 정미, 맑고 바람 붊. ○이른 아침밥을 먹고 선산(善山) 호지내(狐池內)의 송천장(宋天章)의 집으로 가서 묵었는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른 아침에 죽을 먹고 나가서 우장손(禹長孫)을 만나 각대(角帶)를 주며 고쳐달라고 햇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16일 경술, 맑고 바람 불며 매우 추움. ○이른 아침에 죽을 먹고 나가서 우장손(禹長孫)을 만나 각대(角帶)를 주며 고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른 아침을 먹고 도감으로 출근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5일 무술, 맑음. ○이른 아침을 먹고 도감으로 출근했다. 승정원으로 바로 들어가니 박장(朴檣)이 일을 의논하러 왔는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른 아침을 먹은 후, 교하(交河)의 집에서 도감(都監)으로 출근하는 길에 향교동(鄕校洞)에 들러 할아버지 사당에 절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2일 병신, 맑음. ○이른 아침을 먹은 후, 교하(交河)의 집에서 도감(都監)으로 출근하는 길에 향교동(鄕校洞)에 들러 할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른 아침을 먹은 후에 사간원에 출근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11일 기미, 가뭄. ○이른 아침을 먹은 후에 사간원에 출근했다. 상좌(常坐)에 대사간‧사간‧헌납 등이 좌기(坐起)하여 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른 아침을 먹은 후에 사간원에 출근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4월 9일 정사, 가물고 바람이 붊. ○이른 아침을 먹은 후에 사간원에 출근했다. 상좌(常坐)정례회의에 임(林) 사간(司諫),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른 아침을 먹은 후에 판관의 말을 빌려 타고 사우(士遇)‧경우(景遇)와 함께 천평(泉坪)으로 향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4월 3일 병술, 맑음. ○이른 아침을 먹은 후에 판관의 말을 빌려 타고 사우(士遇)‧경우(景遇)와 함께 천평(泉坪)으로 향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우응(李友膺)의 집에서 자고, 식후에 성주 읍내로 들어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1월 21일 기해, 맑음. ○이우응(李友膺)의 집에서 자고, 식후에 성주 읍내로 들어왔다. ○아내가 다시 만수(萬守)를 보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웃 마을이 편치 않고 아울러 누에치는 일이 한창 바빠서 조상을 제사하지 못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5월 5일 갑자, 흐리다가 비가 내림. ○이웃 마을이 편치 않고 아울러 누에치는 일이 한창 바빠서 조상을 제사하지 못했다. ○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판결사(李判決事)가 빌려간 목면 8필을 보냈는데, 전에 승낙했던 것을 지킨 것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28일 정미, 밤에 천둥과 번개가 치고, 저녁에 잠시 비가 내림. ○이판결사(李判決事)가 빌려간 목면 8필을 보냈는데, 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이휘(李煇)와 라숙(羅淑)‧라식(羅湜) 등이 그렇게 한 까닭을 다시 묻기 위해 다시 남문 밖으로 올랐으나 이휘는 한 번에 승복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9월 9일 기사, 흐림. ○이휘(李煇)와 라숙(羅淑)‧라식(羅湜) 등이 그렇게 한 까닭을 다시 묻기 위해 다시 남문 밖으로 올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갑(仁甲)과 같이 이야기 하며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17일 계유, 맑음. ○인갑(仁甲)과 같이 이야기 하며 잤다. 숙길(淑吉)도 옆에서 잤다. 아침밥은 당(堂)에서 함께 먹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갑(仁甲)과 함께 잤는데, 숙길(淑吉)도 옆에 있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19일 을해, 흐림. ○인갑(仁甲)과 함께 잤는데, 숙길(淑吉)도 옆에 있었다. 아침에 함께 바둑을 두었다. ○아침밥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갑(仁甲)과 함께 잤는데, 숙길(淑吉)도 옆에 있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18일 갑술, 맑음. ○인갑(仁甲)과 함께 잤는데, 숙길(淑吉)도 옆에 있었다. 당(堂)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갑(仁甲)과 함께 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20일 병자, 맑고 바람이 붊. ○인갑(仁甲)과 함께 잤다. 인갑은 이른 아침밥[蓐食]을 먹고 인사하고 남원(南原)으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동현(仁同縣)에 출행하여, 서헌(西軒)에서 묵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6월 1일 정미. 계하(季夏) 6월 큰달 기미 ○인동현(仁同縣)에 출행하여, 서헌(西軒)에서 묵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삼강활산(人參羌活散)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2월 14일 무진, 맑음. ○인삼강활산(人參羌活散)을 먹었다. 두통이 낫지 않았다. ○내려가서 아내를 보았는데, 어제 저문 뒤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시(寅時)오전 3시에서 5시 사이에 아내가 소공주동(少公主洞)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21일 계미, 가뭄, 가문 기운이 엷게 낀 구름 같고, 해는 빛이 없으며, 달은 붉고 빛이 없음. ○인시(寅時)오전 3시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정전(仁政殿)에서 연향(宴享) 습의(習儀)를 해서 아침 일찍 나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20일 임자, 비가 골고루 내린 것 같음. ○인정전(仁政殿)에서 연향(宴享) 습의(習儀)를 해서 아침 일찍 나갔다. 제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종(仁宗)의 국기(國忌) 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7월 1일 을사, 가물고 더움. 7월 큰달 경신 ○○○인종(仁宗)의 국기(國忌) 일이다. ○당(堂)에 머물렀다. 재계하고 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종(仁宗)의 국기(國忌) 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7월 1일 신축. 맹추(孟秋) 7월 큰달 임신 ○○○○인종(仁宗)의 국기(國忌) 일이다. ○한(韓) 합천(陜川) 군수가 부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종(仁宗)의 국기[國忌]일이므로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7월 1일 정사, 맑다가 흐리고 비가 내림. 맹추(孟秋) 7월 큰달 병신 ○○○○인종(仁宗)의 국기[國忌]일이므로 재계하고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인종(仁宗)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7월 1일 계미, 흐림. 맹추(孟秋) 7월 큰달 무신 ○○○○인종(仁宗)의 기일이다. ○약을 먹지 않았다. 내려가서 함께 소식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일선(一善)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1월 14일 신해, 맑다가 흐림. ○일선(一善)에 머물렀다. 부사 송사일(宋士一)의 생신 잔치에 참석했다. ○아침에 일어나 빗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일이 없어서 머물러 있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3일 을미, 가뭄이 극심함. ○일이 없어서 머물러 있었다. 아내가 밤에 본댁에서 돌아왔다. ○아침 경연(經筵)이 있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일이 없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6일 무술, 밤에 비가 내리다가 아침에 그침. ○일이 없었다. 책을 묶고 주자(朱子)의 시를 뽑아서 베꼈다. ○길재(吉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일찍 김(金) 도사(都事)를 만나러 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5년 11월 6일 계해, 따뜻하고 흐리다가. 저녁에는 천둥 번개□□□. ○일찍 김(金) 도사(都事)를 만나러 갔다. 김서성(金瑞星)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일찍 외청으로 나갔는데 주인이 조반을 차렸기에 함께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9월 27일 신사, 맑음. ○일찍 외청으로 나갔는데 주인이 조반을 차렸기에 함께 먹었다. 성심(成諶)이 아침에 와서 나를 초대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일포(日晡)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빈전에서 조전(祖奠)발인 전에 영결을 고하는 제사 의식을 거행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2일 을미, 맑음. ○일포(日晡)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빈전에서 조전(祖奠)발인 전에 영결을 고하는 제사 의식을 거행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임금이 정릉(靖陵)중종의 능에 친제(親祭)를 행하러 파루(罷漏) 후에 출궁하셨다가 저녁에 환궁하셨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11일 계유, 맑음. ○○○임금이 정릉(靖陵)중종의 능에 친제(親祭)를 행하러 파루(罷漏) 후에 출궁하셨다가 저녁에 환궁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자시(子時) 초에 조전(朝奠)과 상식(上食)을 올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9일 임인, 청명함. ○자시(子時) 초에 조전(朝奠)과 상식(上食)을 올렸다. 동시에 천전(遷奠)을 행하였는데, 백관이 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자시(子時)밤11시에서 1시 사이 중간에 조전(朝奠)을 행했고, 3경4점(三更四點)밤12시 30분에 아침 상식(上食)을 했으며, 4경1점(四更一點)새벽 1시에 견전(遣奠)을 행하고 드디어 발인을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2월 3일 병신, 맑음. ○자시(子時)밤11시에서 1시 사이 중간에 조전(朝奠)을 행했고, 3경4점(三更四點)밤12시 30분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작은 청색 벼루를 통지(通之)에게 보내주어 벼루 갑에 먹을 넣어 행장에 넣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24일 병술, 북풍이 불고 맑고 시원함. ○작은 청색 벼루를 통지(通之)에게 보내주어 벼루 갑에 먹을 넣어 행장에 넣게 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동(長洞)에서 성주 관내로 돌아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4월 20일 임신, 맑고 더움. ○장동(長洞)에서 성주 관내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순지(純之)와 함께 바둑을 두었다. 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 김(金) 씨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22일 무인, 맑고 참. ○○장모 김(金) 씨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아침에 내려가 함께 밥을 먹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丈母) 님의 기일이어서 죽청(竹廳)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10월 22일 신축, 흐리다가 비가 내리고 밤에 바람이 붊. ○○○장모(丈母) 님의 기일이어서 죽청(竹廳)에서 제사를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10월 22일 을축, 맑음. ○○장모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다 지내고 나니 날이 밝았다. ○아침에 당(堂)에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님 기일이므로,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0월 22일 신미, 맑음. ○○장모님 기일이므로,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아내가 이곳에 머무르다가 저녁때 내려갔다.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님의 기일(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22일 정묘, 맑고 따뜻함. ○○장모님의 기일(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정섭(鄭涉)이 제사를 도왔다. ○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님의 기일(忌日)이므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10월 22일 정미, 맑고 바람이 불다가 밤에 잠깐 비가 내림. ○○장모님의 기일(忌日)이므로 제사를 지냈다. 손자가 일어나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님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10월 22일 병오, 맑음. ○○장모님의 기일이다. 아내가 제수를 차렸고, 내가 아들 아들 : 이문건의 아들은 이름이 熅(151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님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6년 10월 22일 기묘. ○○장모님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정조(正租) 5섬‧정미(正米) 1섬으로 희년(希年)의 올해 환자[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22일 계미, 비가 뿌림. ○○장모의 기일이다.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적(炙)에 고기를 썼다. ○아내가 당(堂)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10월 22일 계유, 맑음. ○○장모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정(鄭) 랑(郞)정섭(鄭涉)을 가리킴‧숙길(淑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10월 22일 을유. ○○장모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안봉사(安峯寺) 승 등이 와서 백지‧상지 등을 주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려 혼자서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0월 22일 기축, 맑고 밝음. ○○장모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려 혼자서 지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솔가루[松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22일 정묘. ○○장모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행호(幸浩)가 와서 쌀 2말을 갚았다. ○서동(西同)을 평안도(平安道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모의 기제(忌祭)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22일 신묘. ○장모의 기제(忌祭)를 지냈다. ○저녁에, 당(堂)으로 돌아와 잤다. ○백인상(白獜祥)이 모과[木瓜] 16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丈人)의 기일(忌日)이라 제사를 아주 간단히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7월 6일 갑진, 크게 가물며 매우 더움. ○○장인(丈人)의 기일(忌日)이라 제사를 아주 간단히 차렸다. 아들의 병이 위독하기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丈人)의 기일이나 두역으로 꺼려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다만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7월 6일 임술, 비가 내림. ○○장인(丈人)의 기일이나 두역으로 꺼려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다만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丈人)의 기일이나 집안에 역병(疫病)이 들어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다만 안봉사(安峯寺)에서 시식(施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7월 6일 갑오, 흐림. ○○장인(丈人)의 기일이나 집안에 역병(疫病)이 들어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다만 안봉사(安峯寺)에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丈人)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7월 6일 경술, 크게 가뭄. ○○장인(丈人)의 기일이다. 수기(壽祺)와 함께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수기(壽祺)와 ~ 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의 기일이나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다만 안봉사(安峰寺)에 쌀을 보내 시식(施食)하게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7월 6일 정사, 바람이 불고 가뭄이 심함. ○○○장인의 기일이나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다만 안봉사(安峰寺)에 쌀을 보내 시식(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7월 6일 무자, 흐리고 비가 내림. ○○장인의 기일이다.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혼자 했다. ○숙길(淑吉)과 정섭(鄭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의 기일이라 당(堂)에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7월 6일 신해, 남풍이 크게 불고 맑다가 흐림. ○○○장인의 기일이라 당(堂)에 제사를 차렸다. 제사를 마치자 해가 났으니,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7월 6일 경자. ○○○장인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집의 부서진 곳을 보수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6년 7월 6일 을미. ○○○장인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경산(慶山) 향리 정기상(鄭奇祥)이 포(脯)‧생선을 보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의 기일이라 죽청(竹廳)에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7월 6일 임오. ○○○장인의 기일이라 죽청(竹廳)에 제사를 차렸다. ○신수(信修)가 와서 오이[瓜] 50개를 주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의 기일이라 죽청(竹廳)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7월 6일 임오, 가물고, 새벽에 비가 흩뿌리다 바로 그침. ○○○장인의 기일이라 죽청(竹廳)에서 제사를 지냈다. 정섭(鄭涉)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인의 기일이어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7월 6일 병오. ○○장인의 기일이어서 제사를 지냈다. ○만수(萬水)‧실이(實伊) 등이 가서 소금을 가지고 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장해목의 벌채에 관한 관습(삼림법제) [일제의 조선관습자료 해제와 DB화 작업 | 연세대학교(원주캠퍼스)]분류기타 | 소장처CiNii論文PDF(원문) | 출판사미상
-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10일 병인, 맑음.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필이(必伊)에게 하가(下家)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7월 5일 경술, 중복, 갠 듯하다가 낮에 비가 뿌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아이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죽청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6년 10월 21일 무인.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7월 5일 정해, 흐리고 비가 흩뿌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내려가서 함께 밥을 먹고 돌아와서 유(兪)유웅(兪雄)을 가리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2월 25일 경진, 맑고 바람이 크게 불었고, 저녁에 눈이 흩날림. ○재계하고 소식(素食)했다. 새벽에 비기환(肥炁丸) 5개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하고 지내며 아이를 가르쳤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2월 6일 병신, 맑고 바람이 참. ○재계하고 지내며 아이를 가르쳤다. 아이는 화를 잘 내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죽청(竹廳)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하며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2월 15일 임술, 바람 불고 구름 끼고 비가 뿌렸는데, 밤에도 이와 같았음. ○재계하며 지냈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하며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1월 26일 신축, 맑음. ○재계하며 지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이득전(李得荃)이 와서 약에 대해 물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하며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6년 2월 14일 병자. ○재계하며 지냈다. ○판관이 노루 다리 1짝을 보냈다. ○이순인(李純仁)이 꿩 1마리를 보냈다. ○허지필(許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하면서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11월 13일 병인, 맑고 선선함. ○재계하면서 지냈다. 같은 집에 머물렀다. 약을 먹었다. ○금금(今金)이 유곡(酉谷)에 가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계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6월 14일 갑신. ○재계했다. ○성주 관속에게 서과(西瓜)를 달라고 청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궁(齋宮) 숙소로부터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고개 두 개를 넘고 내를 하나 넘어 오근천촌(吾斤川村) 늙은 비(婢)의 집에 당도하여 쉬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5월 24일 을사, 밤에 내린 비가 아침에도 그치지 않았고, 무지개가 서쪽에 보이더니 종일 여전히 비가 내림. ○재궁(齋宮) 숙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궁(齋宮)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9일 무오, 맑음. ○재궁(齋宮)에 머물렀다. 노(奴)들에게 사초(莎草)를 지고 묘소로 올라가게 했다. ○밥을 먹은 후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재궁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8일 정사, 흐리다가 맑음. ○재궁에 머물렀다. 아침에 노(奴)들로 하여금 석인(石人)을 모두 세우고, 밥을 먹은 후에 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녁 무렵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내려 천지를 흔들더니 사창(司倉) 앞에 있는 큰 홰나무의 허리 부분이 절단되어 넘어졌다고 한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6월 24일 을해, 흐리고 잠깐 비가 내림. ○저녁 무렵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내려 천지를 흔들더니 사창(司倉) 앞에 있는 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녁에 비가 개었으나 여전히 흐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2월 28일 경진, 비가 내림. ○저녁에 비가 개었으나 여전히 흐렸다. ○살구‧복숭아‧진달래‧산다(山茶)차의 일종가 모두 피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무르며 관곽(棺槨) 만드는 일을 살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1월 13일 기사, 비와 눈이 내림. ○저동(苧洞) 집에 머무르며 관곽(棺槨) 만드는 일을 살폈다. 목수들이 일을 시작했다. 식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무르면서 관곽(棺槨) 만드는 일을 살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1월 14일 경오, 맑음. 눈이 녹아 땅이 젖음. ○저동(苧洞) 집에 머무르면서 관곽(棺槨) 만드는 일을 살폈다. ○주서 이공망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14일 계해, 흐림.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이순정(李順貞)‧유윤진(柳潤晋)이 다녀갔다. ○권사우(權士遇)가 다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3일 임자, 흐림.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았다. ○남윤화(南允和)가 보러 왔고, 이기(李祺)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2월 2일 신해, 흐리다 비가 내림.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죽주수(竹州守)와 바둑을 두었는데 그가 강해서 적수가 되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1월 28일 무신, 맑음.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이광국(李光國)이 다녀갔다. ○염(爓)이 와서 전라도관찰사에게 부탁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1월 24일 갑진, 맑음.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강화(江華) 댁의 노 옥정(玉正)이 와서 경영고(京營庫)경기 감영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1월 21일 신축, 맑고 바람이 붊, 밤4경에 지진.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아내에게 내일 산소에서 쓸 국수와 떡을 준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1월 20일 경자, 맑고 바람이 붊.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홍중숙(洪重叔)이 저녁에 찾아왔는데, 이제옹(李濟翁) 형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1월 19일 기해, 맑고 따뜻함. ○저동(苧洞) 집에 머물렀다. 약을 먹지 않았더니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다. ○이인손(李仁孫)씨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