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1,545,556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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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3월 23일 정미, 맑음. ○약을 먹지 않았다. ○내려가서 함께 밥을 먹고 십행기(拾行碁)를 두었다. 당(堂)으로 돌아와서 글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3월 22일 병오, 맑다가 흐림. ○약을 먹지 않았다. 숙길(淑吉)은 민물고기를 잡겠다고 물에서 걷다가 다시 옆구리가 당기는 증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3월 21일 을사, 맑음. ○약을 먹지 않았다. 숙길(淑吉)은 글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전에 익힌 것을 다 잊어버렸다. ○목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3월 20일 갑진, 비가 내림. ○약을 먹지 않았다. 백화헌(百花軒)에 들어가서 목사를 보았다. 유생이 경서를 고강(考講)하기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2월 22일 병자, 가뭄. ○약을 먹지 않았다. 왼쪽 관자놀이 위가 여전히 아프다. 조금 먹고 바로 피곤해서 쓰러져 잠들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2월 19일 계유, 맑고 바람 불며 추움. ○약을 먹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는 요즘 맨발로 다니더니 밤에 자다가 놀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2월 18일 임신, 맑음. ○약을 먹지 않았다. 배 왼쪽에 덩어리가 있고 또 힘줄이 얽힌 것 같은 무엇이 있어 뱃속이 편치 않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약을 먹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2월 17일 신미, 맑음. ○약을 먹지 않았다. 침을 놓았는데도 두통이 그치지 않는다. ○아내는 익기탕(益炁湯)을 먹었다. 밤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養) 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8월 14일 무오, 맑고 달이 매우 밝음. ○○○양(養) 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 ○아이를 돌보며 당(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동(梁同)이 사모(紗帽)를 다시 칠해서 가져다주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26일 을사, 맑음. ○양동(梁同)이 사모(紗帽)를 다시 칠해서 가져다주었다. ○조막(祖莫)이 알현하고 갔다. ○밥을 먹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사(兩司)가 사직(辭職) 청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18일 경진, 가뭄. ○양사(兩司)가 사직(辭職) 청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재상(宰相)이 모여 계(啓)를 올리기를, “대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사가 함께 새 우상(右相) 이기(李芑)는 물망(物望)에 부합하지 않다고 탄핵하며 개정할 것을 청했다고 한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14일 무신, 입춘, 맑고 추움. ○양사가 함께 새 우상(右相) 이기(李芑)는 물망(物望)에 부합하지 않다고 탄핵하며 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養曾祖)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10월 6일 정사, 맑고 서늘하며 서리가 얼고 나뭇잎이 모두 떨어짐. ○○○양증조(養曾祖)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했다. ○아이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 기일(忌日)이므로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8월 14일 갑자, 흐림, 저녁때 바람이 크게 불어 나무가 뽑히고 벼가 쓰러짐. ○○양증조모 기일(忌日)이므로 소식(素食) 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하고 재계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8월 14일 무자, 맑고 상쾌함. ○○양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하고 재계했다. ○당(堂)에 머물며 솔가루[松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8월 14일 병인, 추분(秋分), 맑음. ○○○양증조모 한(韓) 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지냈다. ○아이를 돌보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養曾祖母) 한(韓) 씨(氏)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8월 14일 경신, 비가 내림. ○○○양증조모(養曾祖母) 한(韓) 씨(氏)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당(堂)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養曾祖母)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6일 신해. ○○○양증조모(養曾祖母)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비호석(非乎石)의 이충량(李忠良)이 와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養曾祖母)의 기일이므로 소식(素食)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8월 14일 경자, 맑음. ○○○양증조모(養曾祖母)의 기일이므로 소식(素食)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손자를 돌보았다. 산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8월 14일 임오,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옴. ○○○양증조모의 기일이다. 내가 지낼 차례라 죽당(竹堂)에 차려놓고 혼자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8월 14일 무인. ○○○양증조모의 기일이라 소식(素食) 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8월 14일 신미, 흐림. ○○○양증조모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약을 재탕해 먹었다. ○손자는 글공부를 하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養曾祖父)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0월 6일 을묘, 밤에 잠깐 비가 내리다가 바로 그치고, 맑음. ○○양증조부(養曾祖父) 양증조부(養曾祖父) : 李繼寧을 말한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養曾祖父)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0월 6일 정묘, 흐리고 춥지 않음. ○○○양증조부(養曾祖父)의 기일이다. 수원(水原) 댁(宅)에서 제사를 지낼 차례이지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養曾祖父)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6일 신해, 맑음. ○○○양증조부(養曾祖父)의 기일이라 재계하고 소식(素食) 했다. ○○복명산(復明散) 등의 약을 먹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養曾祖考]의 기일이어서 소식(素食)을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10월 6일 신묘, 맑다가 흐림. ○○양증조부[養曾祖考]의 기일이어서 소식(素食)을 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아이를 돌보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10월 6일 기유, 맑고 따뜻함. ○○○양증조부의 기일이다. 제사를 친가(親家)에서 지낼 차례이므로 당(堂)에 제사를 차렸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10월 6일 기사. ○○○양증조부의 기일이다. ○당(堂)에 머물렀다. ○보명(普明)이 산 과일[山果]을 보내 자미(資米) 5되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일이라 소식(素食)을 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0월 6일 계유, 맑음. ○○○양증조부의 기일이라 소식(素食)을 했다. ○당(堂)에 머물렀다. 솔가루[松末]를 먹었다. ○직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0월 6일 을해. ○○○양증조부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어제 개동(介同)이 와서 4곳 논에서 난 벼를 바쳤는데 전(全)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양증조부의 기제인데, 내가 지낼 차례이므로 제사를 차려서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0월 6일 임술, 흐리다가 저녁에 비를 뿌림. ○○○양증조부의 기제인데, 내가 지낼 차례이므로 제사를 차려서 지냈다. ○아이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두울 무렵 휘(煇)와 덕응(德應) 두 사람이 군기감 앞에서 극형을 받았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9월 11일 신미, 맑음. ○어두울 무렵 휘(煇)와 덕응(德應) 두 사람이 군기감 앞에서 극형을 받았다. 어두울 무렵 ∼ 받았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월 5일 갑신. ○○○어머니 기일(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1월 5일 임오, 안개가 자욱했다가 낮에는 맑음. ○○○어머니 기일이다. 죽청(竹廳)에 제사를 차려 노성(老成)과 함께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1월 5일 무자, 맑고 바람 붊. ○○○어머니 어머니 : 이문건의 어머니는 고령신씨 申澮의 딸이다. 1463년(세조 9)에 서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1월 5일 임오, 맑음. ○○○어머니 기일이다. 온(熅)을 데리고 소사(小祀)로 지냈다. ○같은 집에 머물렀다. ○전에 앓던 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7년 1월 5일 무오, 흐림. ○○○어머니 어머니 : 이문건의 아버지 允濯과 혼인한 고령신씨 申澮의 딸이다. 1463년(세조 9)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1월 5일 기묘. ○○○어머니 기일이라 제사를 지냈다. ○김담로(金聃老)가 와서 민물생선을 주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기제사라 집에서 재계하며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4일 무술, 맑음. ○어머니 기제사라 집에서 재계하며 머물렀다. ○밤중에□□□□□□□. 고약은 먹지 않고 소합환(蘇合丸)만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3월 8일 병술.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신(辛) 판관이 소 염통[黃心] 1개, 전협[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3월 8일 신유, 맑고 따듯함.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다. 현배(玄培)가 제사를 도왔고, 숙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4년 3월 8일 경술.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 제사를 차렸다. ○정(鄭) 랑(郞)의 종마(從馬)가 서울로 돌아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서 제사상을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1년 3월 8일 병신, 흐리고 바람이 불다가 비가 내려 흙을 적심. ○○○어머니 생기일(生忌日)이라서 제사상을 차렸다. ○당에 머물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생휘일(生諱日)이므로 당(堂)에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2년 3월 8일 경인, 흐리고 바람 붊. ○○○어머니 생휘일(生諱日)이므로 당(堂)에 제사를 차렸다. 천택(天澤)이 제사를 도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 신위에 시사(時祀)를 차려 혼자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9년 2월 19일 신유, 한식, 맑고 바람이 심함. ○○○어머니 신위에 시사(時祀)를 차려 혼자 지냈다. ○죽은 아들과 딸의 제사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6년 1월 5일 을축, 맑음. ○○○어머니의 기일이다.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는데, 천택(天澤)이 제사를 도왔다. ○숙길(淑吉)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1월 5일 기해, 날씨가 맑고 따뜻함. ○○어머니의 기일이다. 제사는 누님 댁 차례이다. 아침 일찍 휘(煇)와 청파(靑坡)로 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 제사를 차려 혼자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7년 1월 5일 신유.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 제사를 차려 혼자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9년 1월 5일 정축, 정월로 듦, 맑음.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새벽에 대추탕을 마셨는데, 기침이 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월 5일 병자, 맑다가 약간 흐림.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천택(天澤)이 제사 지내는 것을 도왔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1월 5일 경인, 밤에 오던 눈이 낮까지 이어져 맑지 않고, 눈 깊이는 여러 자[尺]임.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1월 5일 계묘. ○○○어머니의 기일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서동(西同)이 평안도(平安道)에서 돌아오면서 정(鄭) 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기일이어서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1월 5일 신축, 입춘, 맑음. ○○○어머니의 기일이어서 당(堂)에서 제사를 차렸다. 천택(天澤)이 제사를 도왔다. ○며느리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9년 3월 8일 경진, 흐리고 비가 뿌림.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밤중에 지냈는데, 차를 올릴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2년 3월 8일 임진, 흐리고 저문 뒤에 비가 잠깐 내림.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숙길(淑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려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3월 8일 무진, 밤에 비가 내렸는데, 낮에도 비가 뿌림.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차려 지냈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6년 3월 8일 기해. ○○○어머니의 생기일(生忌日)이라 제사를 지냈다. ○김산(金山)의 이악(李岳)이 곶감 2속(束)을 보냈다. ○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5년 3월 8일 계묘, 맑음.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 생휘일(生諱日) : 亡者가 태어난 날을 말한다. 이 날 지내는 제사를 生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3월 8일 경오, 흐림.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다. 축시(丑時)에 작은 제사로 지냈는데, 휘(煇)가 혼자 했다. 아들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8년 3월 8일 병진, 약간 흐림.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다. 제사를 차려 닭이 첫 울음을 울 때 지냈다. ○아침에 내려가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3월 8일 무신, 밤에 비가 그치지 않더니 낮에는 걷힘.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라 당(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천택(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므로 제사를 차려 천택(天澤)과 함께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3년 3월 8일 갑신, 매우 가뭄.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므로 제사를 차려 천택(天澤)과 함께 지냈다. ○당(堂)에 머물렀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어서 당(堂)에 제사를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5년 3월 8일 을사. ○○○어머니의 생휘일(生諱日)이어서 당(堂)에 제사를 지냈다. ○이형(李亨)이 와서 생산마[生山芋] 3속(束)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니의 신위(神位)에 제사를 지내고 죽은 딸을 배향(配享)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4년 1월 1일 임인, 청명함. 가정(嘉靖) 33년(1554) 갑인 정월 큰달 병인 ○어머니의 신위(神位)에 제사를 지내고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님의 기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6년 1월 5일 계해, 맑고 바람이 불고 추움. ○○어머님의 기일이다. 우가(寓家)에서 제물을 간략하게 차려서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님의 기일이므로 죽청(竹廳)에 제사를 차려서 지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57년 1월 5일 기미, 맑음. ○○○어머님의 기일이므로 죽청(竹廳)에 제사를 차려서 지냈다. 현배(玄培)‧수기(壽祺) 등이 제사를 도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님의 대상(大祥)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1월 5일 을유, 눈이 밤까지 이어져 크게 내리다가 낮이 되어 잠시 그쳤는데 길은 진창이 되어 무릎까지 빠짐. ○어머님의 대상(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머님의 생기일(生忌日)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8년 3월 8일 계미, 크게 바람이 불고 가랑비가 내림. ○○○어머님의 생기일(生忌日) 생기일(生忌日) : 亡者가 태어난 날 지내는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제 기성(箕星)이 춘비(春非)가 일을 성실히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무 활[杻弓]로 등을 세 대 때렸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윤1월 27일 경인, 맑음. ○어제 기성(箕星)이 춘비(春非)가 일을 성실히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무 활[杻弓]로 등을 세 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제 일이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7년 3월 22일 신축, 맑음. ○어제 일이다. 오후에 권사우(權士遇)를 보러 그의 첩의 집에 갔다. 마침 이도남(李圖南)이 와있기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제와 같은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18일 계해, 맑고 따뜻함. ○어제와 같은 약을 먹었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손자가 글공부를 하지 않았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제와 같은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17일 임술, 맑음. ○어제와 같은 약을 먹었다. ○내려가 함께 아침을 먹고 곧 당(堂)으로 돌아왔다. ○황필(黃筆) 1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제와 같은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3년 10월 16일 신유, 맑고 따뜻함. ○어제와 같은 약을 먹었다. ○홀로 당(堂)에서 잤다. 숙길(淑吉)의 술 냄새가 싫어 내려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제와 같은 약을 먹었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2월 12일 정묘, 맑고 몹시 추움. ○어제와 같은 약을 먹었다. 손가락의 힘이 더 빠져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손자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어제처럼 약을 먹었는데도 병이 낫지 않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61년 12월 14일 기사, 맑고 추움. ○어제처럼 약을 먹었는데도 병이 낫지 않는다. 손자를 돌보며 당(堂)에서 잤다. ○내려가서 함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언화(彦和)가 와서 함께 장기를 두며 놀다가 내 상명책(相命冊)을 가져갔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45년 4월 7일 기해, 맑음. ○언화(彦和)가 와서 함께 장기를 두며 놀다가 내 상명책(相命冊)을 가져갔다. ○군거(君擧)가 만나자고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3월 24일 기묘, 맑음. ○여막에 머물렀다. 비갈(碑碣)을 새겼다. ○휘(煇)가 서울에 들어갔는데, 내일 저동(苧洞) 집에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에 머물렀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5년 12월 30일 병진, 맑고 바람 붊. ○여막에 머물렀다. 조곡(朝哭)에는 불참하고, 가까스로 아침저녁 상식(上食)과 저녁 곡(哭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11월 19일 신미, 맑음. ○여막을 지켰다. ○휘(煇)와 문응(文應)이 양주(楊州)로 들어갔는데 회암(檜庵)으로 가서 송엽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9월 27일 기축, 맑고 바람이 붊. ○여막을 지켰다. 기운이 너무 없어서 병이 위중해질까 두려워 서울 집으로 들어가서 편안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8월 3일 병술, 맑음. ○여막을 지켰다. 휘(煇)가 함께 있었다. ○식사 후에 가서 조(趙) 삼재(三宰)가 지은 표석 음기(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8월 2일 을유, 맑음. ○여막을 지켰다. 휘(煇)가 함께 했다. ○문응(文應)이 와서 바둑을 두었고, 저녁에 덕응(德應)이 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7월 20일 계유, 가물고 더움. ○여막을 지켰다. ○이타(李桗)씨가 와서 장기를 두자고 해서, 종일 장기를 두며 즐겼다. 저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7월 19일 임신, 가물고 천둥이 침. ○여막을 지켰다. 온(熅)도 따라서 지켰다. 온이 저녁에 도망하여 서울로 돌아갔다. ○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7월 18일 신미, 맑고 가뭄. ○여막을 지켰다. 온(熅)도 따라서 지켰다. ○수손(守孫)으로 하여금 좁쌀[粟米]을 지고 서울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7월 17일 경오, 말복, 가뭄. ○여막을 지켰다. 온(熅)도 따라서 지켰다. ○이타(李桗) 씨가 검산(檢山)의 집에 왔다기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7월 11일 갑자, 맑고 동풍이 붊. ○여막을 지켰다. 온(熅)도 따라서 지켰다. ○이타(李桗) 씨가 와서 보았고, 문응(文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7월 10일 계해, 맑고 더움. ○여막을 지켰다. 온(熅)도 따라서 지켰다. ○앞밭의 이른 조[早粟]를 베어 말리게 했다. ○문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7월 9일 임술, 맑고 매우 더움. ○여막을 지켰다. 온(熅)도 따라서 지켰다. ○낮에 행자(行者)로 하여금 땀에 젖은 옷을 빨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7월 8일 신유, 맑고 더움. ○여막을 지켰다. 온(熅)도 따라서 지켰다. ○문응(文應)이 와서 종일 바둑을 두었다. 경응(慶應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7월 6일 기미, 흐리고 비 내리고 천둥 침. ○여막을 지켰다. ○휘(煇)가 상식(上食)을 올린 후 서울에 들어갔는데, 본가를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6월 20일 계묘, 맑고 동풍이 붊, ○여막을 지켰다. ○문응(文應)과 바둑을 두었다. 낮에 상보(相甫) 형님이 남쪽 기슭 소나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5월 18일 임신, 가뭄. ○여막을 지켰다. 낮잠을 잤다. 경응(慶應)이 가져온 공책에 글씨를 썼다. ○저녁때 휘(煇)가 서울에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5월 17일 신미, 가뭄. ○여막을 지켰다. 낮잠을 잤다. 한 일이 없다. ○경응(慶應)이 다녀갔는데, 공책(空冊)에 고계(古戒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5월 16일 경오, 가뭄. ○여막을 지켰다. 한 일이 없다. ○휘(煇)는 18일이 어머니 기일이므로 서울에 들어갔다. ○염(焰)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4월 9일 계사, 맑음. ○여막을 지켰다. 비갈(碑碣)을 새겼다. ○휘(煇)가 저녁때 돌아왔다. ○경응(慶應)‧수응(壽應)이 저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4월 7일 신묘, 잠깐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함. ○여막을 지켰다. 비갈(碑碣)을 새겼더니 피곤하다. ○휘(煇)가 일 때문에 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3월 27일 임오, 맑고 바람 붊. ○여막을 지켰다. 비갈(碑碣)을 새겼다. ○염(熖)이 일찍 인사하고 갔는데, 다시 양주(楊州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3월 14일 기사, 흐리고 비 내림. ○여막을 지켰다. 비갈(碑碣)을 새겼다. ○휘(煇)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일이 어긋나서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 ○여막을 지켰다 [16세기 역사상의 재해석 :『묵재일기(默齋日記:1535〜1567)』교감(校勘) 및 역주(譯註) 사업 | 서울대학교]1536년 3월 12일 정묘, 맑고 바람 불고 아침에는 안개가 낌. ○여막을 지켰다. 비갈(碑碣)을 새겼다. ○휘(煇)가 오후에 서울에 들자료문의서울대학교(연구책임자 : 정긍식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