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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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皆啓下取用之物, 必無中間消融之事, 而更當申飭矣, 予欲言之而未果矣。 蓋公, 翁主, 吉禮衣服, 古則皆以綾羅用之, 自孝廟朝, 改以方紗紬, 至於海昌尉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曰, 國恤三年內, 有常參設行之事乎? 大行朝, 曾爲常參, 而似是辛丑年矣。 宗伋曰, 似是壬寅年矣。 上曰, 孝廟朝及先朝三年內, 設行與否, 考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曾已無處不貸, 着手無地, 言念國計, 罔知攸措, 似聞關西各庫, 有木五千餘同, 錢三十二萬兩云, 目今曹事, 若是窮急, 不可不及時變通, 而在如此之時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卽承宣所奏宣廟朝左議政臣澈, 承宣之領相奏者, 誤耳。 以己丑按獄及改宗系事, 封光國平難功臣寅城府院君, 松江, 卽號也。 臣之高祖名宗溟, 擢龍灣庭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07]一島五人, 其數太多, 臣亦曾已仰達矣。 臣則以有司之臣, 奉命往試而已, 固不敢更爲仰請, 而第聞江都士子無多, 雖以留守狀啓觀之, 其數不過百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江都米五百石, 請得運來, 以求涸轍之急, 經亂蕩殘之民, 決無准捧還償之理, 限今年捧留事陳達, 有令廟堂稟施之命矣。 江都軍餉, 散在各邑者, 輒事捧留,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一樣軍丁, 而堯·舜猶病博施, 御史之拔去三手, 必有所由, 何可一一減除乎? 致中曰, 有廟堂重於御史時, 有御史重於廟堂時, 今不必計較彼此輕重, 而凡事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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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在魯曰, 頃日戶曹判書金東弼, 以己酉年關西錢之作米於湖南者, 留賑本道之代上送價本, 自戶曹取用事陳達, 故臣以此米。 乃是朝家劃給賑廳者, 今雖以本價上送,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不得已以兵屬於帥府, 退歸平壤, 收戮賊孥之在境內者十三口, 俄有罔極之報, 傳說藉甚, 尙吉會參佐曰, 吾儕今日, 只有一死, 毛將擁十萬兵在我境,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曰, 十六板, 帝嘗校獵廣成, 遂至上林苑, 光錄勳陳蕃, 上疏諫曰, 安平之時遊畋, 宜有節。 況今有三空之厄哉? 其言好矣。 卽今國家無馳騁弋獵之娛, 固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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