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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司憲李植啓曰, 臣伏見杞平君兪伯曾上疏。 大槪, 有曰, 先治大臣誤國之罪, 次論江都失守之 二行缺 此正所謂不知有君父者也。 臣雖未見原疏, 臣之怵迫權勢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雖不得以已也, 其得以已者, 亦不可以已乎? 積骸未掩, 流血未乾, 掠口未返, 於是時也, 而鞭撻孑遺之孤寡, 無以觀美而相勝。 嗚呼, 其亦不忍也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則國隨以亡, 積粟雖多, 烏得以食諸? 自句簡之設, 內外騷屑, 農商先業, 大小蹙額, 怨咨盈路, 此臣等所以瀝血論執, 殿下亦嘗惕念於該掌施措之先, 宜特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備邊司啓曰, 今番園所之役, 石物雖減, 丁字閣齋室造成等事, 乃是前謄錄所無之役, 役軍半減之後, 各項需用布米, 依前令各衙門扶助啓稟, 則備局回啓, 以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諫院啓曰, 今年凶歉, 振古所罕, 此時民窮財乏, 爲甚丁卯之變亂, 至如方物, 自前多有全減之時, 側聞, 今年誕日冬至, 及壬申正朝方物之價, 皆令備局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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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正言李時楳來啓曰, 請亟罷江都句管之所。 措辭見上 答曰, 勿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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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又以兵曹言啓曰, 上番騎兵山城扈衛及江都往來者合三百餘名, 而還都之後, 現存只八十餘名。 屢朔仍番之苦, 固不足道, 欲尋其父母妻子, 逐日號訴, 情理可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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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修撰尹鳴殷疏曰, 伏以臣偏母有難醫之疾, 已成沈痼十年于玆, 從前忝侍近列, 聞母病重, 則方寸輒亂, 上章歸見, 猶恐不及於生前者曾非一再, 此實聖明, 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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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造成等事, 乃是前謄錄所無之役, 役軍半減之後, 各項需用布米, 依前令各衙門扶助啓稟, 則備局回啓, 以木一百二十同酌定, 而江都·南漢之米, 亦爲除出, 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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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宣惠廳啓曰, 魂殿山陵三年內所用菜物柴炭等價, 自戶曹磨鍊分定於京畿各邑, 而己亥以後國恤時, 爲除畿民之弊, 始令本廳句管給價, 而價本則或以江都米, 或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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