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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物力凋弊, 雖欲有爲, 無力可施, 此甚可悶矣。 海西遂安·谷山·新溪等邑, 距水路甚遠, 故田稅輸納之際, 民多怨苦, 而自江都, 折價防納於戶曹,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江華留守尹趾完, 承旨李思永, 假注書李東馣, 記事官沈季良·宋相琦入侍。 上曰, 卿器度沈深, 且練事務, 江華乃保障之地, 著實奉職, 可也。 尹趾完曰,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兵曹判書閔宗道所啓, 來十一月當慶尙道十哨禁衛軍兵, 依例準二朔上番之意, 旣已入啓蒙允, 知委本道矣。 臣於頃日, 進去江都, 親審築城形止, 則月串鵂巖近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鎭長曰, 曾因領相所達, 畿內分給淸米, 秋捧時輸納江都事定奪, 而卽今民情, 不願輸納江都, 擧皆稱冤, 欲爲上納賑廳云。 下詢于大臣, 更爲定奪, 何如?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曲承其旨, 必欲充報, 抄出富民, 分給生息者, 于今六七年矣。 發斂之際, 一島富戶, 偏被其害, 怨讟徹天, 呼籲無地。 頤命, 苟欲爲民設賑, 則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啓曰, 仁廟朝節死臣故參議洪命亨, 以文章淸直, 見重於世。 當丁丑亂, 與先正臣金尙容等, 竝殉節于江都, 亂定後, 朝家, 贈吏曹參判, 及至當宁辛酉年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其萬全, 而至於避陸寇, 則實無踰於江都, 然人謀不臧, 天塹若失, 則海島孤絶, 倉卒移蹕之難, 反不如平陸之地, 易以轉徙避兵者, 思之至此, 實爲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H010402]江都矣。 其後, 湖西諸邑, 以道里之遠, 罷屬本道, 南陽等諸邑, 亦以摠戎軍兵單弱, 移屬摠戎廳, 獨通津, 爲本府屬左營, 而豐德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不至。 以南漢言之, 蜂巖·汗峯·南格臺·越峯等處, 皆在元城之外, 而丙子俱爲賊所據, 大砲直入城內, 幾不能支, 故經變之後, 始築蜂巖,而汗峯則臣爲守禦使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裕軍餉而積儲之, 省宇營堡, 器械資備, 一如都城之制而設置之, 及其有變之日, 上奉廟社, 步輦徐登, 都中士民, 負戴相隨, 車駕所在, 捲都邑而隨之, 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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