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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云, 移秧之節, 旱氣比甚可慮, 自上振勵如此, 在下之人, 其敢不仰體乎? 各道監·兵使守令處, 各別申飭, 民事荐飢之餘, 秋成雖未及, 不可不使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又啓曰, 嶺南竝保身布, 自備局句管, 而有同公物, 故各處或買或貨, 隨捧隨散, 終無着實區處之事矣。 江都·南漢自朝宗朝以來, 務加儲積, 而物力猶患凋殘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舊城, 所見虛疎云, 雖欲改築, 當仍用舊石, 其工比新築, 必半減矣。 朴權曰, 築城, 旣有朝令, 故臣則奉行而已。 城址, 若包入南山, 則東西有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事。 沿海之邑, 則另加申飭軍務, 而雖非沿海之邑, 所儲軍器, 必多未備, 諸道巡察·統制·兵使·水使等處, 亦爲一體分付, 使之別樣申飭, 何如? 頤命曰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之於此書所藏處云者, 前後之言, 矛盾如此, 亦不足多辨也。 獨怪夫鎭遠必欲祖述於未必徵信之言, 而反忽之於兩儒賢前後陳達明白正大之論也。 臣等先祖炳然忠烈,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徐宗泰曰, 江華留守趙泰老狀啓以爲, 本府每年還上, 以八千石定數, 而近年又以三四千石加給矣。 今已十巡分給, 而麥農旣歉, 麥秋前當更分數巡, 而穀物已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有。 都城·蕩春, 旣作賊藪之後, 惟彼北漢孤城, 何能獨保乎? 奉廟社入此危地, 決非爲臣子所敢議者。 蕩春城役, 尤極無謂, 國人皆曰, 可罷, 臣亦謂不可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例責出於畿民, 則當自宣惠廳, 給其價米, 而本廳一年所捧, 不足以支一年之用, 凡干酬應, 常患不足, 況此近萬石之米, 決無辦出之路, 勢將以賑廳及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是也, 而峽中之民, 非山則無可耕之處, 其爲火田, 亦出於不得已, 一切禁之, 果爲難矣。 就道曰, 雖禁之, 必不能一如禁令, 只宜不可使依舊耕之而已也。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 雖難盡爲築城, 其施設, 則任事者議定, 惟在從速區劃耳。 堂揆曰, 雖陸賊, 乘船下泊, 則無防遏之計, 築城之言, 誠爲有理矣。 柳赫然曰, 臣曾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76,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