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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曰, 自古天下安治, 未有久而不亂者。 又曰, 忘禍亂則釁孽萌, 此所謂不知亂之至也。 惟我國家, 昇平日久, 七十年來, 外無邊警, 而夫何近歲以還, 凶歉荐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與各軍門海西保米相換, 則彼此俱便, 而兵營本木, 以翌年所捧防農木仍存, 亦便於還報, 凡此數件, 俱是臆料, 而百爾思量, 亦無出此, 不得不仰陳, 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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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今年還上, 勢難準捧, 自戶曹參酌定式, 減捧事, 命下矣。 各道還上, 當自戶曹, 從其災實, 定式分付, 至於江都 南漢移轉之穀, 所當準數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 此後落講·代講校生, 盡屬於江華餘丁, 着實收布, 以爲給代之地, 而令柳赫然, 專爲句管擧行, 兵曹所在餘丁布, 則爲先下送, 可也。 備局謄錄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402]江都, 則卒然以不服習之軍兵, 付之江都, 統號令, 則其間掣肘不便之端, 必有甚焉。 湖西海美營軍兵, 則在江都頗遠, 雖難往來操鍊, 而畿邑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江都, 事甚便當, 限五六年爲之, 何如? 南九萬曰, 以江都軍餉之無儲, 屢勤上敎, 臣雖多般料量, 俱無便當取穀之策, 每以爲慮, 三南月課價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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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十倍於辛亥, 民生之飢餓, 有甚於辛亥, 前頭年事之豐稔, 又不可必, 今年農事, 若或失稔, 則雖使銀布, 積如丘山, 亦何所用哉? 江都·南漢所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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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三覆入侍時, 校理趙泰采所啓, 臣待罪玉堂, 城池軍務, 非臣所可仰達, 而臣以軍門郞廳, 有査問事, 往返江都, 歷路見文殊山城, 則只有數家, 四門及倉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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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乎? 上曰, 然。 頤命曰, 聖上已膺徽號, 今此正本, 以某王御眞, 書其標題, 恐爲得宜矣。 上曰, 依爲之。 鎭遠曰, 正本畢後, 標題卽令書寫乎?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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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府使申硌, 因趙憲倭寇必至之言, 聚民築城, 壬亂後, 月川君李廷馣, 勤王西行, 行到延安, 因衆望推爲主將, 申硌爲副將, 守城力戰, 倭兵屢敗, 且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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