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戶曹判書閔鎭長所啓, 南漢將士之仰食廩料者, 其數甚多, 而饌物無以計給, 似聞江都待變物種中, 白醢最優云。 每年輸致數甕于南漢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今已八年矣。 近年以來, 連爲陰雨之役, 民未息肩, 當速有慰悅之道, 不必待秋爲之, 依所達設行於春間, 可也。 泰老曰, 前留守狀啓中, 以所屬六邑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閔鎭遠, 往見文殊城, 以城內狹窄, 難容邑居云, 故其議仍寢矣。 大槪文殊城內雖狹窄, 官舍倉庫, 尙可排置, 而城外北邊頗廣, 可容民居矣。 領議政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若過十餘放之後, 頗與素習者無異, 臨時習放, 足爲精兵。 至如投石發機等事, 人誰不爲? 議者或以爲數千里襲人之國者, 必先置人於城中, 以爲內應之資, 儻有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禮曹啓曰, 命下矣。 今此聖敎, 實出於爲民省弊之盛意。 凡在臣僚, 孰不敢感歎而將順哉? 第念若從水路, 則擔輦砲殺手前後射隊, 雖可以減除, 船隻整待,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則江都, 當爲保障之所, 而如有海寇, 則江都, 決不可往, 南漢, 雖險固, 非萬全之地, 當此災異孔酷, 國事疎虞之日, 恬憘狃安, 不早定計, 脫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備邊司達曰, 因右參贊李健命所啓, 淸北監賑御史, 旣已差出, 而江都米及海西詳定米, 畫給關西元數中, 以義州飢荒之尤酷, 除出移給, 則餘數不多, 今若以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爲之。 戶曹判書鄭載嵩所啓, 一朔頒料支用之數, 不下八千石, 而卽今所儲, 僅支明年二月, 漕運則例在五月間, 必得三萬石, 可以支給於漕運前。 管理·賑恤兩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兵曹判書趙師錫所啓, 江都築城時所用地乃木, 斫用於摩尼山, 則事甚便好, 而係是保障之地, 不敢率意擅行, 敢此仰達。 上曰, 斫用, 可也。 謄錄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且卽今江都, 南漢軍餉之蕩竭, 誠非細慮, 自上別爲下敎, 令廟堂料理充備, 臣等亦嘗晝夜思度, 而未得善策, 嶺南大同儲置米, 餘數稍優, 故使之除出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페이지 / 7684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