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6,83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홈 > 연구성과별 자료보기
  • ○柳尙運曰, 江華留守李頤命狀啓, 以爲本府各鎭堡土卒給代, 例以餘丁木下送, 而今年則四月以後, 全未給代, 請令廟堂, 斯速分付下送云。 江都十一鎭土卒等給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金鎭龜所啓, 御營廳所管江都城牒及水門頹壞等處, 開春卽時修築之意, 曾已定奪, 且臣待罪本廳後, 得見留守金昌集啓聞, 則以爲水門加出之處, 旣是肉土, 海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以備邊司言啓曰, 以禮曹判書金鎭龜, 榻前所啓, 今年春間, 江都移轉穀, 在南漢近邑者, 使之輸納南漢, 則各邑, 以姑爲分給民間, 秋成卽爲捧納之意,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且海路有寇, 則尤不當入也。 南漢雖近, 曾亦缺六七字有津路, 倉皇急遽之時, 渡涉實難, 二處俱未缺四五行則倚險, 故城堞尤少, 賊若久據都城, 則與駐蹕之所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障重地, 而連爲陰雨之備, 六七年來, 民未息肩。 前留守閔鎭遠, 欲爲收拾民心, 以觀試才設行之意狀請, 而尙未覆啓, 軍民日夜顒望矣。 今番習操, 雖爲停止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還上, 以八千石定式分給, 不足則必啓聞蒙許, 然後加給, 其耗穀則皆令本府取用, 而廣州則無此規, 故還上分給之數, 常患太過, 本府殘弊莫甚, 而耗米無一升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而處之, 何如? 上曰, 文殊築城之後, 有通津邑移入城內之議, 今已年久, 未得記其緣何事仍寢, 而移設爲當, 今分明, 可也。 刑曹判書朴權曰, 臣於庚寅年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海西之棘城, 功費甚鉅, 完了無日, 而沁築之役, 又方張矣。 噫, 以蕞爾之國, 哀痛之儲, 雖萬不可已之事, 蓄力省用, 相時以動, 猶懼不贍, 況諸處鉅役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任舜元, 以賑恤廳言啓曰, 因吏曹正郞趙泰億疏陳, 備邊司覆啓內, 湖南所在平安道作米, 輸納江都, 民多怨言, 令該廳稟處事, 命下矣。 上年京倉米一萬數千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守堞之計, 則自鞍峴至龍山, 如瀋陽之築外城, 然後當通江都, 不但有運糧之道, 朝廷命令, 庶有遍及八路之便, 南漢亦宜各別修築, 以爲都城左右翼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페이지 / 7684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