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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以爲度支取用江都米六千石之代, 以本道軍作米劃報事, 命下, 而今年穡事之失稔, 沿邑最甚, 今以許多未包, 分定沿邑, 釐其所有, 輸送江都, 則所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湖西道內, 訓鍊都監·禦營廳·禁衛營軍收米, 稱以三局, 作米上納者, 其數都計一道各邑, 則殆過累萬石, 且除船價, 則其數尤多。 而但都監用度甚繁, 似難許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江都, 而聖上之奮此大志, 實在於玆, 微臣之抱此痛恨, 亦在於此, 暴此情於殷憂天啓之聖主, 得以無用之賤臣, 充備聖主知恥之一物, 以作聖世不忘恥之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似不可已, 然當初呈文時, 臣亦知此時設行之爲未安, 一朝建請之爲率易, 而及至向者, 依南漢一體觀武才命下之後, 三年內設科, 旣無所拘, 而一府企望,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荒, 逐歲災減, 本館用度之匱乏, 職由於此, 故前後句管堂上, 以此陳達, 請得賑廳米穀錢布者, 非止一再, 而該廳, 近以廳儲不敷, 或至啓達防塞。 自癸卯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十一疋則邊將之用, 如堡將, 只受二十六疋, 二十疋給代, 六疋爲其所用, 以此何取衍餘治軍器乎? 雖如數遂[逐]朔上下, 實不可責其修擧, 況近來兵曹, 以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尤被大殺, 流離顚連, 且在秋冬云, 顧今中外儲蓄, 再衰三竭, 必無以措手救濟, 臣雖身在遠外, 以前夏講冤之事, 揣得今日景色, 聖心之焦勞, 廟算之遑撓,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兵曹判書尹游疏曰, 伏以臣於前月初, 左鬚髮際, 忽生小癤, 始則易之, 未卽調治, 連値動駕, 亦不敢言病, 累犯風寒, 毒氣暴肆, 半面浮烘, 瘡根內餘,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連爲行素, 則卿等有請, 固將勉從, 而自十六日, 至十八日, 俱是不可不行素之日矣。 在魯曰, 十六日則不必行素, 以常人言之, 行役之際, 或値齋素, 則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洪象漢, 以備邊司言曰, 江都築城事, 旣已定奪矣, 燔甓浮石之役, 三軍門今方開場。 而工匠員役等糧料米, 姑難這這輸去, 以本府餉米中量宜取用後, 令三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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