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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備邊司啓曰, 京畿水營, 爲海路要衝, 江都唇齒之地, 而本營物力, 十分凋殘, 軍器戰船, 無計修補, 此時海坊之虛疏, 尤涉可慮。 故曾因水使李益亨狀啓,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今年災實, 若泛論某邑災, 某邑實, 而分數給災, 只及於尤甚之邑, 則惠澤不均, 民怨必多。 敬差都事巡歷時, 詳細摘奸, 雖非尤甚之邑, 亦有被災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大臣·備局堂上·使臣引見入侍時, 領議政許積所啓, 京畿·江都·南漢軍餉還上, 則不入於蕩減之中, 積年未收, 一時盡捧, 民多不堪, 至有結項而致死者云。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有諫者, 不得回心, 凡缺 致熏曰, 此心在於方寸之內, 存之則是, 而若眈缺免流放矣。 晸曰, 存心專靜, 然後萬事缺何事可做? 墪曰, 謝良佐, 見程子擧冊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昌明曰, 明春築城事, 纔已定奪矣。 本營軍兵, 至今年十二月, 五哨上番, 自明年正月, 十哨上番事, 前已稟定, 而今此城役, 依前江都築城例, 以外方軍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李師命啓曰, 上年秋, 江華留守申晸, 以江華義僧事, 陳達於筵中, 其時領敦寧金壽恒, 以爲當初南漢築城時, 以僧徒赴役, 故仍爲設置七寺, 以諸道僧人,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非以此爲規而然也, 土邊無好字, 故今番則所以不拘於此也。 權大運曰, 辛卯冊禮時, 所用儀仗, 歲月已久, 頗爲傷破, 用之不安, 丁未年冊禮時儀仗, 則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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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同日晝講入侍時, 上曰, 今番江都築城時, 雖申嚴禁令, 人衆所聚, 必不無民田踐傷之患, 念及於此, 殊切矜憐。 曾在己未築墩之日, 亦有蠲減民役之事, 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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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亦涉疎虞, 且以事體言之, 扶安等三邑, 旣不爲道內山城之所屬, 又欲免格浦之所管, 中間脫免, 實涉無據, 三邑軍餉, 竝爲設倉於格浦, 一依萬頃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備邊司啓曰, 畿甸各邑所受江都·南漢兩處軍餉, 捧留本官事, 纔已定奪分付矣。 大興山城軍餉所受各邑中, 海西各邑, 則當依定式還納山城, 而畿甸各邑, 則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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