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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司諫南九萬所啓, 臣伏見江華留守金徽上疏, 自癸卯以後, 給民以小斛, 收民以大斗云。 如此之事, 雖是朝命, 爲官守者, 當有改稟之擧, 而本府前後之官,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又啓曰, 嶺南餘軍布, 卽各營·各堡每年十二朔分防外, 一番餘軍處收布, 而其數幾至二百餘同, 曾在先朝, 以一半貿送藥丸, 輸置江都, 一半分給三南各營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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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曰, 朴世采, 開筵之日, 使之入侍。 又所啓, 廢朝時, 宗室龜川君睟, 錦山君誠胤, 憤慨陳疏, 請斬爾瞻, 竝被竄謫, 睟則癸亥放還之後, 仁祖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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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答刑曹粘目曰, 全家罪人, 乃是徙民, 雖遇大赦, 不得擧論之意, 旣已定奪, 則今日留守所爲, 殊甚疏闊是去乙, 該曹不但不爲執法請罪, 又從而欲請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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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等馬也。 尹掞伏于前。 上曰, 履歷何官耶? 對曰, 曾經繕工監役, 而厥後無職耳。 上曰, 何年得此官乎? 對曰, 辛亥臘月爲之。 上曰, 京畿六驛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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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本道監司, 嚴刑三次, 如其不死, 則定配南方, 可也。 領議政鄭太和所啓, 江華所捧租一萬七千石, 此租乃還米一石之代, 收捧二石者也。 留守徐必遠, 擇實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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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沈梓, 以備邊司言啓曰, 戶曹遣儲竭乏, 無以支用, 而六道田稅, 竝皆捧留本道, 故關西米五萬, 移運劃給之外, 且給江都米三萬石, 以爲經費之事, 曾已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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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拔濫及, 此豈尋常除拜之比哉? 臣誠感激, 有淚盈襟, 第臣情事, 有萬分悶迫者, 不得不籲呼於憫下之天, 伏惟聖明之垂察焉。 臣早嬰痼疾, 晩遭橫厄, 精力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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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缺賑救減稅等事, 是戶判缺見, 豫度將來之事, 今日所當減省者, 不但御缺於祭享等事, 亦可減省, 大臣今方入侍, 祭享等事, 亦爲停當減省, 然後方可次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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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戶曹啓曰, 以備邊司啓辭, 江都米三萬石, 令本曹, 整齊船隻, 發遣郞官, 與本府郞廳, 眼同改量運來事, 蒙允矣。 本曹正郞李箕徵, 今將發送矣。 莫重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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