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2705
[개설]
역과(譯科)는 잡과의 하나로 역과 전공에는 한어(漢語)·몽어(蒙語)·왜어(倭語)·여진어(女眞語)가 있었다. 여진어는 1667년(현종 8)에 청어(淸語)로 개칭되었다. 식년시와 증광시 합격 정원은 19명으로 동일하였으며, 대증광시 정원은 21명이었다.
[내용 및 특징]
역과에는 한학·몽학·왜학·여진학[청학] 등 4개 전공이 있었으며, 한학이 가장 중시되었다. 여진학은 1667년에 청학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에서는 대명외교의 중요성 때문에 건국 직후부터 한학 교육을 실시하였으나, 몽학은 1419년(세종 1), 왜학은 1441년(세종 23), 여진학은 1451년(문종 1)부터 실시하였다. 왜학 전공자가 유구어를 같이 익히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9년 11월 27일].
역과는 문과나 무과와 달리 대소과의 구별이 없는 단일과로서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실시하였으며, 초시·복시 2단계만 있고 전시(殿試)는 없었다. 초시는 자(子)·오(午)·묘(卯)·유(酉)의 식년 전해 가을에 사역원(司譯院)의 주관 아래 실시하였고, 복시는 식년 봄에 사역원 제조와 예조 당상관의 주관 아래 실시하였다. 초시에 향시(鄕試)가 있는 것은 한학뿐이며, 역학원이 있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관찰사가 실시하였다.
합격자 정원은 초시에서는 사역원시 23명, 황해도 향시 7명, 평안도 향시 15명인 한어 45명, 몽어·왜어·여진어 각 4명으로 총 57명이었다. 최종 선발 시험인 복시에서는 한어 13명, 몽어·왜어·여진어 각 2명으로 총 19명이었다. 식년시와 증광시가 동일하였다. 국가에 경사가 겹쳤을 때 특별히 실시하는 대증광시에서는 초시에 각 전공별로 4명, 복시에 각 전공별로 2명씩을 더 선발하였다. 시험 과목은 전문서·경서·『경국대전』이며, 초시와 복시가 동일하였다. 시험 방법은 한어는 역학서와 사서(四書)의 강서(講書)와 『경국대전』의 번역이며, 몽어·왜어·여진어는 역학서와 경서의 사자(寫字)와 『경국대전』을 번역하는 시험을 치렀다.
시험 방법은 강서(講書)·사자·역어로 구분하였다. 사서는 임문고강(臨文考講)하게 하고, 『노걸대』·『박통사』·『직해소학』은 배송(背誦)하였다. 역어는 한학·몽학·왜학·여진학은 모두 임문으로 『경국대전』을 번역하게 하였다. 각 과목은 통(通)·약(略)·조(粗)로 채점하는데 통은 2분(分), 약은 1분, 조는 반분으로 계산하여 분수가 많은 사람을 선발하였다. 합격자에게는 예조인(禮曹印)을 찍은 백패(白牌)를 주었다. 합격 등수에 따라 7품~9품의 관품을 주고 임시 관직인 사역원 권지(權知)로 임명하였다. 1등은 종7품계, 2등은 종8품계, 3등은 종9품계를 주고, 이미 품계를 가진 사람은 1계를 더 올려 주고, 올린 품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품계와 같을 때에는 다시 1계를 올려 주었다.
[변천]
역과 시험 과목은 『속대전』에서 변경되었다. 중국어 학습서인 『오륜전비(五倫全備)』를 추가하고 『직해소학』은 폐지하였다. 『대전통편』에서는 우리말로 풀이한 중국어 단어 책 『역어유해(譯語類解)』를 추가하고 『오륜전비』는 폐지하였다. 몽학·왜학·여진학 사자 시험 과목도 축소되었다. 몽학은 『속대전』에서 『노걸대』·『첩해몽어』만 남기고 나머지는 폐지하였고, 『대전통편』에서 몽고어 학습서 『몽어유해(蒙語類解)』를 추가하였다. 왜학은 『속대전』에서 『첩해신어(捷解新語)』 외에 나머지는 폐지하였다. 여진학은 『속대전』에서 『팔세아』·『소아론』·『노걸대』·『삼역총해』로 하고 나머지는 폐지하였다. 『대전통편』에서는 잡과의 첫째 자리가 역과에서 음양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