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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강대홍”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0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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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9)

사전(3)

  • 한성준(韓成俊) [한국전통연희사전 | 고려대학교]
    활동할 당시, 명고이자 춤과 줄타기의 명인으로 유명했던 강경수(姜敬秀)에게 북을 전수받았다. 한성준의 고법은 강대홍(姜大弘, 가야금산조의 명인 강태홍(姜太弘, 1894-1957)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추정), 김재선(金在先, 1900-?), 김득수(金得洙, 1917-19...
    대분류판소리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전경욱 교수
  • 사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사방사업계획(1935∼1944)을 수립하였으며, 1934년에는 <조선사방사업령>의 시행에 따라 사방사업비를 국가부담체제로 전환하였다. 1933년과 1934년에 낙동강대홍수재해와 1935년 전라도지방의 대한발재해복구사업으로 한, 수해이재민구제사방사업을 실시하는 등...
  • 송파산대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을 송파장터에서 벌였는데, 이 때에 구파발‧애오개[阿峴]‧퇴계원‧의정부‧노돌나루[鷺梁津]등지에서 20여 명의 명연희자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듬해 한강대홍수로 송파마을 전체 270여 호가 완전히 유실되어 주민들만 가락동과 돌말이[石村]로 물러나 정착하면서 산대놀이...
    연계항목송파산대놀이(松坡山臺놀이)

고서·고문서(7)

  • 1929년 강대홍(姜大鴻) 고목(告目)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29년 8월에 무성서원 서재의 장대영 등이 강대홍에게 도내 유림 장의로 임명되었음을 알리는 문서이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내용분류정치/행정-보고-고목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 현소장처강진 진주강씨 강성민
  • 1929년 강대홍(姜大鴻) 망기(望記)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29년 8월에 유림도회소에서 강대홍을 무성서원 도내유림장의로 추천하는 문서이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망기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 현소장처강진 진주강씨 강성민
  • 1931년 강대홍(姜大鴻) 망기(望記)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31년 10월에 유회소에서 강대홍을 무성서원 도내훈장으로 추천하는 문서이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망기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 현소장처강진 진주강씨 강성민
  • 1931년 강대홍(姜大鴻) 고목(告目)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31년 10월에 무성서원서재의 강병선 등이 강대홍에게 도내 훈장으로 임명되었음을 알리는 문서이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내용분류정치/행정-보고-고목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 현소장처강진 진주강씨 강성민
  • 경자년(庚子年) 강진향교(康津鄕校) 통문(通文)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경자년 4월에 강진향교 전교 조규영과 장의 최상구 등이 강진군 옴천면 봉림리에 거주했던 진주강씨 강창회와 그의 손자 강진수, 그리고 강진수의 아들인 강대홍의 효행과 학행을 천양하고자 무성서원에 보낸 문서이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내용분류사회-조직/운영-통문 | 형식분류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 현소장처강진 진주강씨 강성민

신문·잡지(8)

기타자료(1)

  • 강대홍;姜大鴻 [근대 한국의 학력 엘리트 데이터베이스 구축 | 한국교원대학교]
    072604 일본 東京 中央大學 中央大學우리同窓會 회원명부 1935―06―10 32면 강대홍;姜大鴻 경남 사천군 三千浦邑 東里 근대 한국의 학력 엘리트 데이터베이스 구축
    학교소재지역東京 | 학교명中央大學 | 자료문의한국학교원대학교 교육박물관 한국근대교육사 연구센터

주제어사전(1)

  • 강대홍 / 姜大洪 [역사/근대사]

    1904-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김해(金海)이다. 1925년 1월 경남청년연맹 준비위원을 맡았으며, 같은 해 6월 진영소작인회 창립대회 실행위원을 지냈다. 1926년 10월 동아일보 부산지국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김단야(金丹冶)·박헌영(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