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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예술인
  • 성계옥 / 成季玉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진주검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에서 남명 조식의 후학인 유학자 서산 성갑주의 딸로 태어났다. 1947년부터 1951년까지 경상남도 산청군차황초등학교에서 준교사를 했다. 1947년 진주권

  • 송범 / 宋范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국립무용단장,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무용가. 17세 때 최승희의 춤을 보고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1945년양정중학교(5년제) 졸업 후 조택원, 박용호에게 워킹발레 중심의 이시이바쿠 기본을 배웠고, 장추화무용연구소에서 조

  • 신재효 / 申在孝 [문학/구비문학]

    조선 후기의 판소리 이론가·개작자·후원자. 전라북도 고창 출생. 아버지 신광흡(申光洽)은 경기도 고양 사람으로 한성부에서 직장(直長)을 지내다가 고창현의 경주인(京主人)을 하던 선대의 인연으로 고창에 내려와 관약방(官藥房)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 어머니는 경주 김씨로

  • 안제승 / 安濟承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교육자.무용이론가. 1922년 서울에서 출생한 안제승은 1943년 일본 니혼[日本]대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였다. 1944년 그는 형 안막(安漠)과 형수이자 무용가인 최승희의 주선으로 김백봉과 결혼했다.

  • 안채봉 / 安彩鳳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6호 서편제 「춘향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전통예인. 일제강점기 후반에 광주권번에서 가무악을 익힌 후 판소리꾼으로 활동하였고, 1950년대부터 전라남도 광주를 중심으로 가무 활동을 한 전통예인이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6호 춘향가

  • 어무적 / 魚無迹 [문학/한문학]

    조선시대 「유민탄」, 「신력탄」 등을 저술한 시인. 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어변문(魚變文)이며, 아버지는 사직(司直) 어효량(魚孝良)이다. 성종·연산군 때에 벼슬이 높았던 어세겸(魚世謙)과 어세공(魚世恭)과는 재종형제(再從兄弟) 사이다. 어머니가 관비임에도 불구하고 아

  • 엄계흥 / 嚴啓興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국산집』을 저술한 여항시인. 아버지는 명필로 유명한 엄한붕(嚴漢朋)이다. 신분은 서리(胥吏) 출신이며 이천보(李天輔)와 사귀었는데, 천보가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신분의 제약으로 뜻을 펴지 못하였으나 권세있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 영수합서씨 / 令壽閤徐氏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차이백추하형문」, 「차계아동가십영」, 「차당인방은자불우」 등을 저술한 시인. 서경주(徐景霌)의 손녀이며, 감사(監事)서형수(徐逈修)의 딸로서 후에 승지(承旨)홍인모(洪仁謨)와 결혼했다. 슬하에 홍석주(洪奭周)·홍길주(洪吉周)·홍현주(洪顯周) 삼형제와 두 딸을

  • 옥봉이씨 / 玉峰李氏 [문학/한문학]

    조선시대「규정」,「증운강」 등을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봉지(李逢之)이다. 미천한 신분으로 인해 조원(趙瑗)의 소실이 됐다. 옥봉 이씨가 남긴 시는 모두 32편인데 1704년(숙종 30)에 조원의 후손인 정만(正萬)의 손에 의하여 『가림세고(嘉林世稿)』의

  • 운초 / 雲楚 [문학/한문학]

    조선시대 「오강루소집」, 「대황강노인」, 『운초당시고』 등을 저술한 기생.시인. 평안남도 성천 출생. 성천의 명기로서 가무와 시문에 뛰어났다. 김이양(金履陽)의 인정을 받아 종유하다가 1831년(순조 31)에 기생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소실이 되었다. 그 뒤 시와 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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