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연은전(延恩殿)

서지사항
항목명연은전(延恩殿)
용어구분전문주석
관련어원묘(原廟), 혼전(魂殿)
분야왕실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경복궁에 있던 덕종(德宗)과 인종의 위판을 모신 원묘.

[개설]
원묘(原廟)는 ‘원(原)’이 ‘이중’, ‘거듭’이라는 뜻으로 이미 정묘(正廟)인 종묘(宗廟)가 있지만 다시 세운 사당을 말한다. 조선초기에는 혼전(魂殿)이 그 역할을 다한 뒤 폐지되지 않고 ‘원묘’로 성격이 바뀐 경우도 있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에 신주를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내용 및 특징]
연은전은 성종이 생부 의경세자(懿敬世子)를 덕종으로 추숭한 뒤 그의 위판(位版)을 봉안한 원묘이다. 명나라에서 그에게 내린 시호 ‘회간(懷簡)’을 따라서 그를 회간대왕(懷簡大王)이라 일컬었고, 별전(別殿)을 연은전이라 칭하였다[『성종실록』 6년 10월 14일]. 경복궁의 옛 세자궁에 연은전을 건립하였다.

1788년(정조 12)에 편찬된 『춘관통고(春官通考)』에는 ‘덕종이 예종과 형제이고, 덕종이 왕위에 즉위한 적이 없어서 문소전에 들어갈 수 없기에 별도로 신무문(神武門) 안에 연은전을 건립하여 향사(享祀)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 뒤 1547년(명종 2) 9월 16일 인종의 혼전인 영모전(永慕殿)에서 위판을 받들어 내어 다음 날 9월 17일 연은전에 부(祔)하였다.

[변천]
연은전이 있었던 경복궁은 이후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왜적이 궁궐을 불태웠을 때 소실되었다.

[참고문헌]
■ 『춘관통고(春官通考)』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

■ [집필자] 이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