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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노부(鹵簿) 행렬에 편성된, 상단부가 참외를 세워 놓은 모양의 의장용 도구.
[개설]
‘노부’는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동원되던 의장(儀仗) 행렬을 가리킨다. 궁궐 안에서 시행될 때는 ‘의장’이라 불렀다. 왕의 노부는 그 규모에 따라 대가(大駕)·법가(法駕)·소가(小駕)로 구분되었으며, 왕 이외에 왕비, 왕세자, 왕세손 의장도 있었다. 노부 행렬에는 통치자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각종 깃발·부채·덮개·병기·악기 등 다양하고 화려한 의장 용품이 사용되었다. 금립과는 이러한 의물(儀物) 가운데 하나로, 자루 위에 커다란 쇳덩이를 매단 무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장물이다. 노부에 참여한 군사들이 좌우로 나뉘어 들고 갔다.
[연원 및 변천]
대가노부(大駕鹵簿)와 소가노부(小大駕鹵簿)에 2개씩 배치되었다. 은립과(銀立瓜) 등의 다른 의장과 함께, 왕의 가마인 어연(御輦) 앞에 좌우로 나뉘어 진열되었다. 군사 1명당 1개의 금립과를 들고 행렬에 참여하였는데, 이들 군사는 홍의(紅衣)에 피모자(皮帽子)를 착용하였다. 중궁(中宮) 즉 왕비의 노부에도 금립과 2개와 은립과 2개가 편성되었으며, 이때 금립과를 드는 군사는 청의(靑衣)에 피모자를 착용하였다. 국장(國葬) 의식을 수행할 때에 발인반차(發引班次) 행렬에는 금립과 2개와 은립과 4개가 편성되었다.
[형태]
나무를 참외 모양으로 깎아 금으로 도금한 뒤, 붉게 칠한 자루 위에 참외 꼭지 모양이 위를 향하도록 세워 꽂는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김지영, 「조선후기 국왕 행차에 대한 연구-의궤반차도와 거동기록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