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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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등(金鐙)

서지사항
항목명금등(金鐙)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가례(嘉禮), 군례(軍禮), 길례(吉禮), 흉례(凶禮)
동의어금등자(金鐙子)
관련어노부(鹵簿), 발인반차(發引班次), 의장(儀仗)
분야왕실
유형물품 도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노부(鹵簿) 행렬에 편성된, 상단부가 말 등자 모양인 의장용 도구.

[개설]
‘노부’는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동원되던 의장(儀仗) 행렬을 말한다. 궁궐 안에서 시행될 때는 ‘의장’이라 하였다. 왕의 노부는 그 규모에 따라 대가(大駕)·법가(法駕)·소가(小駕)로 구분되었으며, 왕 이외에 왕비·왕세자·왕세손 등의 의장도 있었다. 노부 행렬에는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각종 깃발·부채·덮개·병기·악기 등 다양하고 화려한 의장 용품이 사용되었다. 금등은 이러한 의물(儀物) 가운데 하나로, 상단부가 등자(鐙子), 즉 사람들이 말에 오르내릴 때 딛는 발판 모양을 취하여 의장으로 사용하였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에는 대가노부(大駕鹵簿)에 10개, 법가노부(法駕鹵簿)에 6개, 소가노부(小駕鹵簿)에 4개가 동원되었다. 왕의 가마인 어연(御輦) 앞에 다른 의장과 함께 좌우로 나뉘어 진열되었다. 1명의 군사가 1개의 금등을 잡고 나아갔다. 군사는 홍의(紅衣)에 피모자(皮帽子)를 착용하였다. 중궁(中宮) 노부에는 4개가 동원되었다. 이때 금등을 잡은 군사는 자의(紫衣)에 자건(紫巾)을 착용하였다. 성종대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왕세자 의장도 나오는데, 금등 2개가 포함되어 있다.

[형태]
붉은 칠을 한 장대의 상단에 나무로 형태를 만들고 금으로 도금한 등자를 거꾸로 부착한 다음, 등자와 장대의 접촉부는 쇠로 장식하여 만든다. 등자는 사람들이 말을 오르내릴 때 디디는 발판을 말한다.『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의 「품목질(稟目秩)」을 보면, 당시 금등 4개를 제작하는 데 두꺼운 단판[厚椵板] 반 닢, 자루용 가시나무 4개, 부금(付金) 2속(束), 정분(丁粉) 6냥, 반주홍(磻朱紅) 2냥, 아교 2냥, 부레 2냥, 쇠심줄 2냥, 석자황(石紫黃) 6돈, 마사(麻絲) 4돈, 생모시 4돈, 정철(正鐵) 10냥, 풀가루 3되 5홉, 명유(明油) 3홉, 겹집용 청색무명[裌家靑木] 30자, 비를 막는 두꺼운 기름종이 4장, 청마사(靑麻絲) 2돈이 필요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
■ 김지영, 「조선후기 국왕 행차에 대한 연구-의궤반차도와 거동기록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