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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

서지사항
항목명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개화정책(開化政策), 내정개혁(內政改革)
하위어장내사(掌內司), 이용사(理用司), 군무사(軍務司), 감공사(監工司), 전선사(典選司), 농상사(農商司), 기기국(機器局), 농무목축시험장(農務牧畜試驗場), 순경부(巡警府), 우정총국(郵政總局), 잠상공사(蠶桑公司), 전환국(典圜局), 혜상공국(惠商公局), 독판(督辦), 협판(協辦), 참의(參議), 주향국(籌餉局), 조련국(操鍊局), 잠상공사(蠶桑公司), 주사(主事), 서리(書吏), 도예(徒隸)
동의어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 내아문(內衙門)
관련어기무처(機務處), 통리아문(統理衙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내무부(內務府), 의정부(議政府), 임오군란(壬午軍亂), 갑신정변(甲申政變),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 삼군부(三軍府), 당오전(當五錢), 친군사영(親軍四營), 내무부(內務府), 궁내부(宮內府), 내장원(內藏院)
분야정치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고종대 개화·자강 정책 추진을 위해 설치한 정1품의 관서.

[개설]
통리군국사무아문은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이후 설치되어 갑신정변 때까지 존속하였던 중앙 관서로 왕 주도의 개화·자강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1품 아문으로서 그 처소를 궐내로 하고, ‘군국 기무를 총괄하고 궁내 사무를 관장’하는 조선 정부의 최고 국정 의결·집행 기관이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임오군란으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 해체되자 이를 대신하여 국가의 기무(機務)를 총괄하여 살피고 궁내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기무처가 설치되었다[『고종실록』 19년 7월 25일]. 기무처는 관제와 재정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임시 기구 성격인 기무처를 넘어 고위 관료가 참여하면서 군사와 재정 등 군국 기무를 관장할 새로운 기구의 설치가 필요했다.

임오군란이 수습 단계에 접어든 1882년 11월, 백성에게 편리하고 나라에 이롭게 하겠다는 ‘편민이국(便民利國)’을 표방하며 외무(外務)를 전담하는 통리아문(統理衙門)이 설치되었다. 다음 달 그 명칭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바뀌었다. 고종이 통리아문의 설치를 명령한 다음 날에는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이 설치되었다. 통리내무아문은 12월 통리군국사무아문으로 개칭되었다[『고종실록』 19년 12월 4일].

이러한 내무(內務)와 외무의 조직 분리는 각국과의 조약 체결 등 외무의 본격화, 임오군란의 수습을 위한 내정 개혁의 절박성 등의 조건이 작용하였다. 통리군국사무아문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다시 설치되었던 삼군부와 신설된 기무처를 흡수하였다. 그리고 임오군란으로 폐지되었던 통리기무아문을 계승하였다.

[조직 및 역할]
통리군국사무아문은 대궐 내에 있으면서 군국 기무를 총괄하였고 그 위상은 의정부와 동일하였다. 통리군국사무아문은 정1품 아문으로 정·종1품의 독판(督辦)과 정·종2품의 협판(協辦), 정3품의 참의(參議) 등 당상관과 당하관급의 주사(主事), 그리고 사무직인 서리와 도예(徒隸)로 구성되었다. 통리군국사무아문 조직은 장내사(掌內司), 이용사(理用司), 군무사(軍務司), 감공사(監工司), 전선사(典選司), 농상사(農商司) 등 6사(司)로 구성되었다. 이 중 농상사와 장내사만 새로운 부서이고 나머지는 통리기무아문 시기의 분장 사무와 다를 바 없었다.

독판은 각 사의 책임자였고 그 아래에 협판과 참의를 두었다. 독판은 정계에서 주요 관직을 역임했던 원로 세력가들로서, 이전의 통리기무아문 당상을 지냈던 인물이 많았다. 이들은 친청(親淸)적인 인물들로서 통리군국사무아문을 통해 내정(內政)과 군정(軍政)을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민씨 척족의 대표자였던 민태호(閔台鎬)는 선혜청 당상과 전환국관리사무 등 다수의 재정 관련 기구를 맡으면서, 장내사 독판으로서 주로 왕실 재정을 관장·확대하는 역할을 하였다. 안동김씨였던 김병시(金炳始)는 친군영제조로서 재정과 군사 관련 업무를 처리하던 이용사와 군무사 독판을 맡았다. 협판은 독판의 지시를 수행하는 실무자로서 개화 정책의 실질적인 추진자들이었고, 민씨 척족 세력이나 개화 관료 등이 임명되었다. 이들은 군사와 재정 관련 업무를 장악하였고, 신설 기구인 기기국(機器局)·혜상공국(惠商公局) 등 주요 기관의 책임자를 겸직하고 있었다. 이들 독판과 협판은 전통적인 기구였던 의정부에서도 중요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주사는 하위직으로 당시 주사 12명 가운데 6명이 새로운 과거 급제자 또는 유학(幼學)일 정도로 새로운 인물이 등용되고 있었다.

통리군국사무아문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왕에게 올린 통리군국사무아문의 계문(啓聞)을 보면, 자강 정책 추진과 관련된 재정과 군사 관련 업무의 비중이 높았다. 재정 확보책으로 통리군국사무아문은 당오전(當五錢) 주조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추진할 기구로 전환국을 설치하고 그 책임자로 민태호를 임명하였다. 1884년 말까지 모두 62만 냥이 주조되었고, 이것은 모두 의정부를 통해 호조(戶曹)와 선혜청, 그리고 구(舊) 군영에 배정되었다. 한편, 새로 발굴되거나 넘겨받은 재원으로는 당오전을 주조하는 것을 비롯해 삼세(蔘稅)·광산·농상(農桑)·목축·그릇과 벽돌 구이·종이·차(茶) 등이 있었다.

통리군국사무아문이 역점을 둔 것은 군사 부분이었다. 군제 개혁의 주 내용은 금위영, 총어영, 총융청, 용호영 등 기존 4영을 친군사영(親軍四營)에 병합하는 것이었다. 당시 청국식 훈련 방식과 명령 계통을 가진 친군 좌·우영과 달리 개화파와 민씨 세력에 의해 훈련받은 친군 전·후영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통리기무아문 시기에는 군령 통일을 목표로 군제 개혁이 진행되었다면 통리군국사무아문에서 추진한 군제 개혁은 군권 장악을 위한 의도가 강하였다. 이들 부대의 책임자에게는 왕의 측근 세력이 배치되었다.

통리군국사무아문은 개화·자강 정책 추진을 위한 여러 관서의 설치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무기를 제조하는 기기국, 친군영의 물품을 조달하기 위한 주향국(籌餉局), 친군영의 합동 훈련을 위한 조련국(操鍊局), 당오전의 상설 주조를 위한 전환국, 잠상공사(蠶桑公司)와 농무 목축 시험장, 그리고 보부상의 상업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혜상공국 등이 그것이다. 이 관서의 책임자는 통리기무아문의 당상들로서, 민씨 세력을 비롯한 고종 측근 세력, 청나라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자들이었다.

통리군국사무아문은 다양한 정치 세력이 참여한 가운데 개화·자강 정책 추진 기구로서의 기능과 함께, 청나라의 내정 간섭에 대응하여 고종의 왕권 강화를 위한 경제적·물리적·인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기구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민씨 세력, 개화 세력, 청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세력 등 상당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세력 간의 갈등, 청나라의 간섭 등으로 통리군국사무아문이 추진한 개화·자강 정책 추진은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변천]
통리군국사무아문은 개화·자강 정책 추진을 위한 신설 관서로 그 대척에 있던 의정부·육조(六曹)와 대립·갈등·타협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그 역할을 확장해 나갔다. 갑신정변을 거치면서 통리군국사무아문은 해체되었으나 같은 내아문인 내무부(內務府)로 계승되었다. 내무부도 역시 군사·재정 등 국가의 군국 기무를 총괄하는 기관이었다. 내무부는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기에는 궁내부·내장원으로 계승되었다. 통리기무아문에서 시작된 신설 내아문은 곧 왕 주도의 개화·자강 정책 추진 기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이기백 선생 고희 기념 한국사학논총 간행 위원회 편, 『한국사학논총: 이기백 선생 고희 기념(하)』, 일조각, 1994.
■ 구선희, 「개항기 관제 개혁을 통해 본 권력 구조의 변화」, 『한국사학보』12, 2002.
■ 은정태, 「고종 친정 이후 정치 체제 개혁과 정치 세력의 동향」, 『한국사론』40, 1998.
■ 이미애, 「1880~1884년 부강 정책 추진 기구와 의정부」, 『한국사론』44, 2000.

■ [집필자] 은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