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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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관(翼善冠)

서지사항
항목명익선관(翼善冠)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관모(冠帽)
동의어오사절각향상건(烏紗折角向上巾), 오사절상건(烏紗折上巾), 익선관(翼蟬冠)
관련어곤룡포(袞龍袍), 관자(貫子), 망건(網巾), 면류관(冕旒冠), 사모(紗帽), 소익선관(素翼善冠), 원유관(遠遊冠), 탕건(宕巾), 평천관(平天冠)
분야생활 풍속
유형의복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가 상복(常服)인 곤룡포(袞龍袍)를 입을 때 쓰던 관모(冠帽).

[개설]
익선관(翼善冠)은 복두(幞頭)의 변형으로, 중국 송나라 때는 절상건(折上巾)이라 하였다가 명나라에서 익선관이라 부르면서 조선에 전해져 사용하게 되었다. 명나라에서는 익선관을 오사절각향상건(烏紗折角向上巾) 또는 오사절상건(烏紗折上巾)이라고도 하였는데, 대나무나 종이 등으로 모자 틀을 만든 후 그 위에 검은색이나 자주색 등의 비단을 발라 만들었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의 익선관은 명나라에서 황제 이하 황태자, 친왕(親王), 군왕(君王)이 곤룡포에 익선관을 사용하는 제도를 따른 것이다. 『대명회전(大明會典)』에 따르면 명나라 친왕의 관복 중 상복(常服)은 1405년(명 영락 3)에 정해졌는데, 황태자는 양 어깨와 등과 가슴에 반룡(蟠龍)이 금직(金織)되어 있는 반령착수(盤領窄袖) 홍포(紅袍)를 입고, 익선관이라고 하는 오사절각향상건을 썼다고 나와 있다. 또한 이 익선관을 친왕과 군왕, 세자가 착용한다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조선의 왕이 익선관을 쓴 시기가 세종 즉위 때의 일로 확인되지만, 태종 때 이미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401년(태종 1) 태종이 사모(紗帽)단령(團領)을 착용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왕이 익선관을 쓴 시기를 1406년 이후부터[『태종실록』 1년 6월 12일] 세종이 즉위한 1419년(세종 1) 사이로 보는 것이다. 왕세자는 왕보다 좀 더 늦은 시기에 익선관을 사용하였다. 1448년(세종 30) 4월에 평각사모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후에 익선관을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세종실록』 30년 4월 24일].

1444년(세종 26)에는 명 황제인 영종이 세종의 상복(常服) 일습(一襲)을 보내주었는데, 이때 향조추사(香皂皺紗)로 만든 익선관을 보내왔다[『세종실록』 26년 3월 26일]. 그 후 익선관의 재료는 시기에 따라 다소 변동이 있었지만, 검은 색상의 얇은 비단이라는 기본적인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익선관의 높이나 뿔의 형태 등에 변화가 있었지만, 역시 큰 변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한제국 이후 관복이 서양식 관복으로 변화되었지만, 일제강점기까지도 왕실 의례에서는 여전히 익선관이 사용되었다.

[형태]
익선관의 기본적인 형태는 명나라의 『대명회전』이나 영조대의 『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서례(序例)」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무백관의 사모와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모정(帽頂)의 높이나 뿔의 모양이 약간씩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틀에는 변화가 없었다. 시대별 변화 양상은 태조나 영조의 어진을 통해,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영왕(英王) 즉 영친왕의 익선관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태조의 어진에 보이는 익선관은 모정이 둥글며 나지막하고 뿔이 작은 편이다. 그러나 영조 어진에서는 익선관이 상당히 높고 뿔[角]도 넓은 편이다. 영왕의 유물에서 보이는 익선관은 영조 때의 것보다 낮은 형태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익선관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신하들의 사모와 같다. 모자의 뒷부분은 곧게 올라가고 앞부분은 정수리 부분에서 턱이 있어서 2단의 구조를 이룬다. 즉 이마에서 실제 정수리까지를 감싸는 하부(下部)와 정수리 위에서 상투를 덮기에 충분한 높이를 지닌 상부(上部) 모정이 연결된 형태이다. 그리고 모자의 상부 앞 중심에 세로 방향으로 청색 변선(辮線) 장식이 있다. 뒤쪽으로는 타원형의 얇은 옷감을 가는 테에 고정시켜 만든 대각(大角)과 두 소각(小角)을 위로 향하도록 붙였다.

[용도]
익선관은 왕이나 왕세자가 국가의 대소 의례 때는 물론, 평상시 집무할 때 곤룡포와 함께 관모로 사용하였으며, 왕이나 왕세자가 사망한 후에는 상의원(尙衣院)에서 가익선관(假翼善冠)을 제작하여 수의용으로 사용하였다. 국상 기간 중 왕이나 왕세자는 졸곡(卒哭) 후 흰색의 익선관을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例)』
■ 『만기요람(萬機要覽)』
■ 『인선후빈전도감의궤(仁宣后殯殿都監儀軌)』
■ 『현종빈전도강의궤(顯宗殯殿都監儀軌)』
■ 김영숙, 『조선조후기 궁중복식』, 신유문화사, 2002.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문서집성』1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