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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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서지사항
항목명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정삼품(正三品) 아문(衙門), 종삼품(從三品) 아문(衙門)
하위어강관(講官), 춘방관(春坊官), 서연진강의(書筵進講儀), 서도(書徒), 궁료(宮僚), 궁료소(宮僚疏), 궁관(宮官), 문학(文學), 배리(陪吏), 보덕(輔德), 부빈객(副賓客), 빈객(賓客), 사서(司書), 설서(說書), 세자부(世子府), 세자사(世子師), 영조동궁일기(英祖東宮日記), 이사(貳師), 자의(諮議), 진선(進善), 찬선(贊善), 필선(弼善), 겸문학(兼文學), 겸보덕(兼輔德), 겸사서(兼司書), 겸설서(兼說書), 겸필선(兼弼善)
동의어춘방(春坊), 계방(桂坊), 시강원(侍講院)
관련어갑관(甲觀), 경종춘방일기(景宗春坊日記), 현종동궁일기(顯宗東宮日記), 황태자궁시강원(皇太子宮侍講院), 경연(經筵), 서연(書筵), 서연관(書筵官),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동궁아관(東宮衙官), 세자관속(世子官屬)
분야정치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관청.

[개설]
전통시대 세자의 교육 및 보도를 담당하기 위한 관청은 신라 경덕왕 때에 동궁아관(東宮衙官)을 두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때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때에는 태자를 세우고 사부(師傅)와 관속(官屬)을 두어 신라 때의 제도를 이어 나갔다. 이런 전통이 조선시대의 세자시강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392년(태조 1) 7월 개국 직후 반포된 관제에서 세자관속(世子官屬)을 설치하여 세자를 위한 강학과 시위를 맡게 하였는데, 좌사(左師)와 우사(右師)가 각 1명, 좌빈객(左賓客)과 우빈객(右賓客)이 각 1명, 좌보덕(左輔德)과 우보덕(右輔德)이 각 1명, 좌필선(左弼善)과 우필선(右弼善)이 각 1명, 좌문학(左文學)과 우문학(右文學)이 각 1명, 좌사경(左司經)과 우사경(右司經)이 각 1명, 좌정자(左正字)와 우정자(右正字)가 각 1명, 좌시직(左侍直)과 우시직(右侍直)이 각 1명이었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 1418년(태종 18)에 세자익위사가 따로 설치되면서 세자에 대한 시강(侍講) 즉 서연은 세자관속에서 전담하게 되었다.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세자관속이 세자시강원으로 개편된 것이 틀림없으며, 1466년(세조 12) 6월 기록에 ‘시강원 필선’이라는 관사 및 직명이 처음 나타나 그 이후 계속 시강원에 관한 기록이 보이므로 세조 12년 6월 이전에 세자시강원으로 개칭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국대전』에서는 세자시강원의 업무를 ‘세자를 모시고 경서와 사서를 강(講)하고, 도의를 올바로 계도하는 일을 맡는다.’고 하였는바, 시강원의 설치 목적은 곧 세자의 교육 및 보도에 있었다.

[조직 및 담당 직무]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하면 세자시강원의 조직 및 담당 직무는 다음과 같았다. 세자시강원의 관원은 모두 문관을 썼는데 이는 시강원이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관청이었기 때문이다. 세자시강원의 관원은 겸임관원과 전임관원으로 구분되었다.

겸임관원에는 영의정이 겸임하는 정1품의 사(師) 1명, 의정(議政)이 겸임하는 정1품의 부(傅) 1명, 의정부의 찬성(贊成)이 겸임하는 종1품의 이사(貳師) 1명, 정2품의 좌빈객과 우빈객 각 1명, 종2품의 좌부빈객과 우부빈객 각 1명 등 총 7명이 있었다. 이처럼 세자시강원의 겸임관원은 종2품 이상의 고위관료가 맡았는데, 종2품 이상은 곧 판서급 이상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세자시강원의 겸임관료는 의정부와 육조의 2품 이상 관료가 맡았으며 이는 세자의 교육 및 보도가 가장 중요한 국정 현안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전임관원에는 종3품의 보덕 1명, 정4품의 필선 1명, 정5품의 문학 1명, 정6품의 사서 1명, 정7품의 설서 1명 등 5명이 있었다. 전임관원은 기본적으로 문과에 합격한 실력자들이었다. 게다가 가문도 좋고 30대에서 40대 정도의 젊은 나이였다. 겸임관원은 종2품 이상의 노성한 경험자들임에 비해, 전임관원은 이상에 불타는 원칙주의자들이 많았다. 세자에게 이론과 실제 그리고 이상과 현실을 균형 있게 교육하고자 하는 뜻에서 겸임관원과 전임관원을 두었던 것이다. 세자는 전임관원에게서 하루 세 차례 수업을 받는 데 비해 겸임관원에게서는 한 달에 두 세 차례 정도만 교육받았다.

전임관원들은 품계로 구분될 뿐 특정한 전공과목이 따로 없었다. 그러므로 전임관원들은 교과과목으로 지정된 모든 과목을 교육할 수 있었다. 전임관원들은 순서를 정해 번갈아가면서 유교 경전과 역사책을 교육했다. 보통은 경전과 역사책을 같이 교육했다. 경전은 이론이라는 측면에서, 역사는 구체적인 사례와 실증이라는 면에서 교육했다.

경전과 역사책을 교육하다가 해당 책이 끝나면 다음 책으로 넘어갔는데, 이때 세자에게 어떤 책을 교육할지는 왕과 세자시강원의 관원들이 의논해 결정했다. 사서삼경과 같은 책은 한번 교육이 끝났어도 또다시 교육시키곤 했다. 유교 교양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경전과 역사책을 되풀이해서 교육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세자의 교육은 ‘서연진강의(書筵進講儀)’라고 하는 의식에 따라 진행되었다. 서연이 거행되는 방에 세자가 앉을 의자를 동쪽 벽 아래에 서쪽을 향하도록 설치했다. 서연관원의 의자는 서쪽 벽 아래에 동쪽을 향하도록 배치했는데, 북쪽이 상석이었다.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세자는 평상복 차림으로 먼저 방에 들어가 기다리다가 서연관들이 대문 밖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고 서서 기다리면 방 밖으로 나와 동쪽 계단을 통해 내려와 서쪽을 향해 섰다. 그러면 서연관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와 서쪽 계단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섰다. 세자가 뒤따라 들어와 자기 자리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면 서연관들도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답배한 후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세자가 앉으면 앞에 책상을 놓았다.

교육은 수업할 부분을 서연관이 먼저 읽고 세자가 따라 읽은 후 서연관들이 내용을 해설해 주는 방식이었다. 설명 이후에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세자가 질문하고 서연관이 대답했다. 질의응답이 끝나면 학습한 내용을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어 외우도록 했다.

학습평가는 서연관들이 일정한 기간마다 왕에게 보고하는 서도(書徒)를 통해 이루어졌다. 서도는 세자의 학습 성취를 대략 세 단계로 나누었다. 이 서도를 통해 왕은 세자의 학업진도, 학업성취도 같은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교과과정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세자는 특별하게 시한을 정하는 일이 없었다. 곧 어떤 책을 어느 기간까지 끝낸다고 하는 예상이 불가능했다. 그것은 다음 교과서로 어느 책이 선정될지도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책을 끝내는 데 들어가는 시간도 전적으로 그 책의 분량과 세자의 학습능력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세자가 교육받은 책의 종류와 그 책을 교육받는 데 들어간 시간은 세자마다 차이가 났다.

[변천]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하면 세자시강원의 전임관원은 문과 출신이어야 임명될 수 있었지만 이것은 인조반정 이후에 이른바 산림(山林)을 등용한다는 명분으로 바뀌게 되었다. 즉 조선후기에 학덕과 명망이 높은 이른바 산림들이 과거시험을 보지 않음으로써 이들은 세자시강원의 전임관원이 될 수 없었으므로 이들을 세자의 스승으로 초빙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대안은 송나라의 고사를 모방하여 당상관은 찬선(贊善)이라 하여 기왕의 전임관원인 보덕의 위에 두고, 당하관은 익선(翊善)이라 하여 기왕의 전임관원인 문학 아래에 두며, 참하관(參下官)자의(諮議)로 하여 설서 다음에 두어서 이들을 서연관으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익선은 후에 진선(進善)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속대전』에 의하면 찬선은 정3품, 진선은 정4품, 자의는 정7품으로 규정되었다. 인조반정 이후에 세자시강원의 찬선, 진선, 자의를 매개로 이른바 산림 세력이 대거 중앙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경국대전』에서는 세자시강원을 종3품 아문으로 규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시강원의 전임관원 중 최고위인 보덕이 종3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조는 1784년(정조 8)에 세자시강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보덕을 기왕의 종3품에서 정3품 당상관으로 승진시켰다. 이 결과 세자시강원은 정3품 당상관의 아문으로 승격되었다[『정조실록』 8년 7월 2일]. 1894년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가 되었다가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탄되면서 이왕직(李王職)의 서무계(庶務係)에 통폐합되었다.

[의의]
조선시대의 세자시강원은 노성한 겸임관료와 젊고 패기 넘치는 전임관료의 이원구조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이상과 현실을 적절하게 조화시킴으로써 뛰어난 후계 왕을 양성하려던 조선시대 제왕교육관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의 교육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강학청일기(講學廳日記)』
■ 『시강원지(侍講院志)』
■ 『열성조계강책자차제(列聖朝繼講冊子次第)』
■ 『열성진강책자목록(列聖進講冊子目錄)』
■ 강태훈, 『경연과 제왕교육』, 재동문화사, 1993.
■ 김문식·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 신명호, 『조선왕실의 자녀교육법』, 시공사, 2005.
■ 최한기, 『강관론(講官論)』, 국립중앙도서관, 1979.
■ 이기순, 「인조조의 반정공신세력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http://history.go.kr) 시소러스

■ [집필자] 신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