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궤(簋)

서지사항
항목명궤(簋)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제기(祭器)
관련어궤개구(簋盖具), 보(簠), 보궤(簠簋), 서(黍), 직(稷)
분야왕실
유형물품 도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국가 제사 의례에 사용된 주요 제기(祭器)로서 메기장[黍]과 조[稷]를 담는 그릇.

[개설]
궤는 조선시대에 대부분의 국가 제사에서 메기장과 조를 담는 데 사용한 제기이다. 의궤에는 궤의 본체와 덮개가 함께 갖추어진 한 벌이라는 뜻으로 ‘궤개구(簋盖具)’라고 명명되어 있다. 궤는 쌀[稻]과 찰기장[粱]을 담는 제기인 보(簠)와 짝을 이루어 제사에 사용될 때는 동일 수량으로 진설되었고,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보궤(簠簋)로도 불렸다.

[연원 및 변천]
정확한 연원을 알 수 없지만 중국 고대에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방보원궤(方簠圓簋)’라 하여 네모[方]진 보와 둥근[圓] 모양의 궤가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하는 동양적 우주관을 함께 구현하도록 제작하여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의 『세종실록』 「오례」에 처음으로 관련 도설(圖說)이 확인된다. 이후 성종대의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대한제국 시기의 『대한예전(大韓禮典)』 등 역대 전례서 및 다수의 의궤에 궤의 도설이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그 중 『국조오례서례』에 중국 고대의 삼례(三禮), 즉 『주례(主禮)』, 『의례(儀禮)』, 『예기(禮記)』 중『주례』의 주(注)에 ‘방보원궤(方簠圓簋)’라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궤의 연원은 『주례』의 편찬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형태]
중국 남송대의 주희(朱熹)가 지은 『소희주현석전의도(紹煕州縣釋奠儀圖)』의 궤의 외형 및 규격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궤의 덮개까지 포함한 무게는 9근(5.4㎏), 덮개까지 포함한 전체 높이는 6치 7푼(약 20㎝), 곡식을 담는 몸체 내부의 깊이는 2치 8푼(약 8.5㎝), 내부의 너비는 5치(약 15㎝), 복부 윗부분의 길이는 7치 9푼(약 24㎝), 너비는 5치 6푼(약 17㎝)이라고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궤를 제작할 때는 이 내용을 참고하거나 따랐다.

궤의 몸체는 원형이고, 몸체의 좌·우 측면에는 동물 머리 모양 등을 본뜬 귀[器耳]가 1개씩 붙어 있으며, 몸체 바로 아래에는 짧은 원통형의 받침다리[圈足]가 달려 있다. 원통형의 받침다리는 실제로는 다리 모양이 아니라 기물 몸체를 밑에서 떠받치는 얕은 받침대 모양이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대한예전(大韓禮典)』
■ 『종묘의궤(宗廟儀軌)』
■ 『소희주현석전의도(紹熙州縣釋奠儀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