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글편지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조선시대 한글 편지는 난해한 어휘, 인명, 지명, 관직명, 물명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어서 조선시대의 사회, 문화, 경제, 법률 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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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글편지:여강이씨가 남편 김진화에게 보낸 편지

서지사항
편지명칭의성김씨학봉김성일종가언간
연대1848년
발신자의성김씨
수신자와의 관계아내
수신자김진화
발신자와의 관계남편
소장처의성김씨학봉종가운장각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팀(연구책임자:황문환 교수)
성과물 상세정보

안내정보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10대 종손 김진화(金鎭華, 1793~1850)의 아내 여강이씨(驪江李氏, 1792~1862)가 전라도 무장(茂長)에 현감(縣監)으로 나가 있던 남편 김진화에게 보낸 것이다. 본문에 “ 폐국 거시 농여 먹으러 드러갓다다 오나 어느 말이 올흔동 아 그저〃 무댱이나 나시기 츅슈〃 …… 법흥 졔 뭇디 못여시니 후편의나 죠곰 무르시”이라고 하였는데, 발신자가 1848년 5월 11일에 보낸 편지(039번)에 “아모려나 무댱이나 나시시면 경올  츅슈〃더니…… 고이  소문이 위름〃오니 게 더고나 바다이오니 엇디〃올고 …… 호쳘 모 초칠일 보내고 쇼상 어제 지내오니 돌 갓다가 어제 와 졔의 무르실가 호 모가 고 기리던 거 몰라 계신  무류”이라고 한 내용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호쳘 모’는 발신자의 둘째 딸로서 시댁이 법흥인데 시조모 광산김씨(光山金氏, 1780~1847)가 1847년 5월 14일에 사망했으므로 ‘쇼상’은 바로 시조모 광산김씨의 소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졔의 무르실가 호 모가 고 기리던 거 몰라 계신  무류”과 본문의 “법흥 졔 뭇디 못여시니 후편의나 죠곰 무르시”을 비교하면 이 편지는 1848년 5월 11일보다 며칠 뒤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