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고고학 기초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한국중세역사학의 고고학 자료 이용 활성화-

한국중세사 연구는 그동안 문헌 자료를 주된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문헌 자료만으로는 더 이상 연구성과의 진전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중세사 연구의 활로를 한국중세고고학과의 학제 간교류에서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서천 화금리 온수골 유적

서지사항
제목서천 화금리 온수골 유적
발행연도2009
발행기관충청문화재연구원
페이지수87
발굴조사자한창균,이호형,나건주,김백범
보고서작성김백범,이호형,나건주
발굴기관충청문화재연구원
발굴지역충청남도
발굴지주소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화금리 일원
발굴위치동경 126˚ 42’ , 북위 36˚ 05’
자료문의숙명여자대학교(연구책임자 : 박종진 교수)
유구 및 사진 자료 보기

발굴목적

본 발굴조사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화금리에 위치한 장항선 5공구 노반개량공사 구간내 6지점에 대한 문화유적 발굴조사로, 본 연구원에서 2006년 8월에 진행한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부지내 문화유적의 구체적인 성격파악과 보존자료를 마련하는데 있다.

발굴상황

조사지역이 위치한 서천읍 화금리 일원은 서천읍성이 위치한 중심가에서 북동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오석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태봉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북-서, 남-동방향의 구릉성 지형이 형성되어 있으며, 구릉지 사이에는 곡부퇴적이 소규모로 발달되어 있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 백제시대 옹관묘 1기, 통일신라시대 원형 수혈1기, 조선시대 토광묘 4기가 확인되었다. 조사지역이 후대의 민묘 조성 등에 의한 형질변경이 심하게 이루어진 지역으로 잔존상태가 비교적 불량하며, 유물도 청동기시대 1호 주거지를 제외한 유구들 대부분이 빈약하게 출토되거나 출토되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고서목차

Ⅰ.조사개요 / Ⅱ.조사지역의 환경 1.지리적 환경 2.역사‧고고학적 환경 / Ⅲ.조사내용 1.선사시대 1)청동기시대 주거지 (1)1호 주거지 (2)2호 주거지 (3)3호 주거지 (4)4호 주거지 2.역사시대 1)백제시대 옹관묘 2)통일신라시대 원형수혈유구 3)조선시대 토광묘 / Ⅳ.조사성과

유구개요

원형 수혈유구는 후대의 형질변경 등으로 어느 정도 훼손된 상태에서 확인되었으나, 형태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원형 수혈유구는 조사지역 하단부의 중앙 평탄면에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원형이며, 규모는 직경 152~164cm, 잔존깊이 22cm이다. 내부에서는 탄화미가 출토되었는데, 무게가 약 120Kg 정도이며, 건조 후 약 60Kg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의 탄화미가 출토되었다. 당시 탄화미는 유구 상부에서부터 확인되었으며, 바닥면까지 약 20~25cm의 두께로 확인되었다. 또한 벽 주변과 바닥면에 소결토가 전면에서 확인되어 곡물은 내부의 화재로 인해 탄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저장시 곡물을 감쌌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니 또는 천의 유무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탄화된 곡물 이외의 목탄이나 여타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본 수혈유구는 곡물만을 저장한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곡물을 직접 수혈유구 내부에 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토층상태를 살펴본 결과 탄화된 쌀은 원형 수혈유구 내부에 쌓여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저장방법 및 시기를 확인하기 위해 식물 규산체 및 화분분석, C-14연대측정을 진행하여 탄화미의 중심연대 및 쌀의 보관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였다. 이를 통해 모든 결과는 AD8~10에 해당하였고, Beta analytic co.(USA)와의 결과와도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원형수혈유구는 비록 청동기시대 4호 주거지와 인접해 있지만 청동기시대와 무관한 유구로, 시기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토광묘는 조사지역 중단부의 경사면에 총 4기가 위치한다.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암반을 굴광하고 조영하였다. 내부퇴적양상은 대부분 암반부스러기가 포함된 명갈색 사질점토 위로 갈색 사질점토가 퇴적되어 있다.

유물개요

통일신라시대의 원형 수혈유구에서 탄화미가 출토되었는데, 무게가 약 120Kg 정도이며, 건조 후 약 60Kg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의 탄화미가 출토되었다. 당시 탄화미는 유구 상부에서부터 확인되었으며, 바닥면까지 약 20~25cm의 두께로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토광묘 4기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종합고찰

서천 화금리 유적은 장항성 5공구 6지점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화금리 일원에 위치한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 백제시대 옹관묘 1기, 통일신라시대 원형 수혈1기, 조선시대 토광묘 4기가 확인되었다. 금번 조사를 진행한 서천 화금리 온수골 유적은 청동기시대 주거지부터 조선시대 토광묘에 이르는 비교적 다양한 시기의 생활 유적 및 분묘 유적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중기 이후 백제시대를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점유활동이 일어난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통일신라시대 원형 수혈유구는 탄화미의 출토된 양상이나 양으로 보아 상당히 특이한 유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출토된 탄화미에 대한 식물규산체 분석과 C-14연대측정과 같은 분석을 진행하여 그 결과 당시 쌀의 저장방법과 시기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은 이후 자료가 확보된 이후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