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중국(中國) 한(漢)나라 무제(武帝) 대에 사용한 연호(기원전 104년~기원전 101년: 무제38~무제41).
그 외에
중국 전진(前秦)의 고제(高帝) 대에 사용한 연호(386년~394년: 고제1~고제8).
중국 서진(西秦)의 무원왕(武元王) 대에 사용한 연호(388년~400년: 무원왕1~무원왕13).
중국 남량(南涼)의 무왕(武王) 대에 사용한 연호(397년~399년: 무왕1~무왕3).
[개설]
중국 한나라 무제가 사용한 11개의 연호 가운데 7번째 연호이다(기원전 104년~기원전 101년).
무제는 기원전 104년 5월에 태초력을 제정한 것을 계기로 ‘태초(太初)’로 개원하였다. 이때의 태초력은 기존 달력의 10월을 정월로 삼아서 이듬해 12월까지를 원년으로 삼았기 때문에, 태초원년은 15개월이다.
조선(朝鮮)에서는 정치 · 사회 · 문화적 변화 및 자연 재해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중국의 예를 참조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태초 연호 또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등장한다.
한편 한나라의 무제 외에도 여러 왕들이 태초 연호를 사용하였다. 우선 중국 전진의 제 5대 군주인 고제(高帝)가 386년 11월에서 394년 6월까지 8년 8개월 동안 이 연호를 사용하였고(386년~394년), 중국 서진 제 2대 왕인 무원왕 또한 388년 6월부터 400년 7월까지 12년 1개월 동안 이 연호를 사용하였다(388년~400년). 그리고 중국 남량의 초대 왕인 무왕도 이 연호를 사용하였으나(397년~399년), 이들의 태초 연호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