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중국(中國) 명(明)나라 희종(熹宗) 대에 사용한 연호로(1621년~1627년), 조선(朝鮮)에서는 광해군(光海君)과 인조(仁祖)가 사용한 연호.
[개설]
중국 명나라 희종 대에 사용한 연호로(1621년~1627년), 희종은 연호인 천계(天啓)를 본 따 천계제(天啓帝) 혹은 천계 황제(天啓皇帝)라고도 불린다.
정치에 뜻이 없던 희종은 환관(宦官) 위충현(魏忠賢)에게 대부분의 일을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위충현의 전횡(專橫)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명(明)의 쇠퇴와 멸망을 앞당기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조선에서는 광해군13년부터 인조5년까지 천계 연호를 사용하였고, 그 가운데 1623년 인조는 반정을 통하여 왕위에 올랐다. 원래 명나라는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찬탈이라 규정하였으나, 금(金)나라와의 관계가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협조를 얻기 위하여 인조를 책봉하였다.
그러나 곧 동아시아의 패권이 청나라로 넘어가게 되면서, 동아시아의 질서는 재편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으나, 청나라는 실질적인 압력을 가하며 조선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라 바로 조선의 명나라 연호 사용 금지 요청이었으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인조실록(仁祖實錄)』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조선 정부가 끊임없이 논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친명(親明) 정책을 고수하며 명나라의 연호인 천계를 사용하기로 하면서, 『조선왕조실록』에는 계속하여 천계 연호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