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명제는 ‘예교주의(禮敎主義)’를 바탕으로 유학자들을 고관에 임명하는 등 학문의 진흥을 이루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다. 아울러 내정만이 아니라 외정에도 소홀함이 없었기 때문에, 명제 연간에 후한은 국가의 기틀 및 안정을 위한 기만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朝鮮)에서는 영평(永平) 연간을 상당히 호의적으로 평가하였고, 이러한 호의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평 연간의 예교주의와 학문의 진흥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유학 진흥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조선 후기보다는 초기에 영평 연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이것은 유학적 사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에서였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영년(永年)’이라는 연호가 등장한다. 그런데 영년 연호에 대하여 ‘탈해왕(脫解王)9년’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보아 ‘영평’ 연호의 오기(誤記)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