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일본(日本) 무로마치(室町) 시대에 고츠치미카도(後土御門) 천황이 사용한 연호(1469년~1487년).
[개설]
일본 무로마치 시대에 고츠치미카도 천황이 사용한 연호이다(1469년~1487년).
문명(文明) 연호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선조실록(宣祖實錄)』 선조31년(1598년) 9월 21일자에 실린, 명(明)나라 병부(兵部) 주사(主事) 정응태(丁應泰)의 주본(奏本)에 등장한다. 정응태는 이 주본에서 조선이 일본과 연합하여 명나라 침공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응태의 ‘조선무고사건’>이다. 이때 정응태가 근거로 든 것들 가운데에 조선에서는 일본의 연호를 중국의 연호보다 더 큰 글씨로 먼저 적는다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명(文明) 연호를 예로 들고 있다. 한편 이후 이 주본이 무고(誣告)라며 선조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주문(奏文)을 중국에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