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중국 양나라의 첫 황제이자 남조(南朝) 최고의 명군으로 칭송 받는 무제가 사용한 7개의 연호 가운데 5번째 연호로(535년~546년), 535년부터 546년 4월까지 11년 4개월간 사용되었다.
무제는 사회 안정과 문화 번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대외 정책도 무리 없이 전개하여 양나라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말년으로 갈수록 불교에 심취하여 여러 차례 중이 되겠다며 동태사(同太寺)로 출가를 하였고,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신하들은 무제를 달래서 황제로 복귀시켜야 하였다. 게다가 환속을 하는 경우 출가하였던 절에 보시를 하던 풍습 때문에, 무제는 매번 동태사에 많은 보시를 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국고의 손실로 이어졌다.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실시하던 조선(朝鮮)에서는 이러한 무제의 행동은 지양해야 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제도 및 의례 정비, 혹은 자연 재해 등에 관하여 중국의 전례(前例)를 찾아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시기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