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중국(中國) 원(元)나라의 성종(成宗)과 무종(武宗)이 사용한 연호(1297년~1307년).
[개설]
중국 원나라의 제 2대 황제인 성종과 제 3대 황제인 무종이 사용한 연호로(1297년~1307년), 성종의 첫 번째 연호인 원정(元貞)에 이어, 성종4년 2월부터 무종원년까지 10년 11개월 간 사용되었다.
원나라는 이전부터 우구데이 칸국 및 차가타이 칸국 등과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304년 성종은 이들 나라들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실크로드 지역에는 몽골의 평화라는 뜻의 ‘바쿠스 몽고리카’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도 잠시였다. 2년 후인 1306년 원나라와 차가타이 칸국이 연합하여 우구데이 칸국을 공격한 후, 그 영토를 분할하여 가졌던 것이다.
한편 당시 원나라의 부마국(鮒馬國)으로, 원나라의 영향 아래 있던 고려(高麗)는 충렬왕(忠烈王)23년부터 충렬왕33년까지 대덕(大德) 연호를 사용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조선과 관련된 사건을 설명하거나, 조선에서 발생한 사건의 전례(前例)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대덕 연간을 살펴볼 때, 대덕 연호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