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조선(朝鮮)과 대한제국(大韓帝國) 시기에 고종이 사용한 연호(1897년~1907).
[개설]
조선과 대한제국 시기에 걸쳐 고종이 사용한 2개의 연호 가운데 2번째 연호이다(1897년~1907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궁을 떠나 있던 고종은 1897년 2월 드디어 환궁하였다. 이어 국운 회복을 위한 여러 조치를 취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건원연호(建元年號)’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의정부(議政府) 대신(大臣) 심순택(沈舜澤)이 올린 ‘광무(光武)’와 ‘경덕(慶德)’의 두 안 가운데, ‘광무’로 연호를 결정하고, 1897년 8월 16일 고종의 조칙으로 연호를 선포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12일에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하면서 광무는 대한제국의 첫 번째 연호가 되었으며, 1907년 8월 고종이 순종에게 황위를 양위할 때까지 10년간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고종실록(高宗實錄)』 고종34년(1897년) 8월 14일자에 연호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광무 연호가 처음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