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중국 당나라의 제 9대 황제인 덕종이 사용한 3개의 연호 가운데 첫 번째 연호이다(780년~783년).
건중(建中) 연간 동안 덕종은 조용조제(租庸調制)를 폐지하고 양세법(兩稅法)을 시행하는 등 재정 확보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는 달리 이무렵 당나라는 여러 개의 난이 발생하여 매우 어수선하였다. 건중3년인 782년에는 회서 절도사 이희열(李希烈)이 난을 일으켰고, 이어 건중4년인 783년에는 <건중의 난(亂)>이 발생하였다. <건중의 난>은 주비(朱沘)가 태위(太尉)가 되어 장안(長安)을 중심으로 모반을 꾸민 것으로, 결국 주비가 그의 장수에게 죽음을 당하면서 난은 평정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덕종은 연호를 건중에서 흥원(興元)으로 개원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임금에게 정치에 더욱 신경 쓸 것을 건의할 때에 주로 이 사건을 언급한다. 아울러 덕종이 노기(盧杞) 등의 간신을 임용하여 이성(李晟)~육지(陸贄)와 같은 충신을 배척한 것을 가리켜 <건중의 조정(調停)>이라 하는데, 이것 또한 당쟁과 관련된 『조선왕조실록』 기사에 많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