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중국(中國) 청(淸)나라 성조(聖祖) 대에 사용한 연호로(1662년~1722년), 조선(朝鮮)에서는 현종(顯宗)~숙종(肅宗)~경종(景宗) 대에 사용.
[개설]
중국 청나라의 제 4대 황제인 성조가 사용한 연호로(1662년~1722년), 성조는 강희(康熙) 연호를 본 따 강희제(康熙帝) 또는 강희 황제(康熙皇帝)라고도 불린다. 중국 역대 황제 가운데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성조 대에 청나라는 국내 · 외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조선에서는 현종3년부터 숙종을 거쳐, 경종2년까지 이 연호를 사용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강희 연호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현종실록(顯宗實錄)』 현종3년(1662년) 1월 1일자 기사로, 청나라의 연호가 강희로 개원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강희 연호는 다양한 의미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였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연대(年代) 표시의 역할이다. 이것은 조선이 독자적인 연호 대신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성조를 지칭할 때 연호만을 사용하여 강희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정비하는 경우 중국의 예를 참고할 때 강희 연간을 참고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 조선이 명(明)나라가 아닌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과 관련된 기사들 곳곳에서 강희 연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기사들 대부분은 관리들과 선비들이 문서에 강희 연호를 사용하는 비난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높게 평가하였다. 이것은 조선이 명나라를 중국의 정통으로,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로 여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