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총론]
[1471년(성종 10)~1500년(연산군 6) = 30세]. 조선 9대 임금인 성종(成宗)의 후궁. 성종이 세상을 떠난 후 귀인(貴人)으로 진봉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금성현령(金城縣令)을 지낸 권수(權壽)이며, 어머니는 의영고(義盈庫) 사(使)를 지낸 한가구(韓可久)의 딸인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다. 할아버지는 돈녕부(敦寧府) 지사(知事)를 지낸 권격(權格)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제용감(濟用監) 판사(判事)를 지낸 권순(權循)이다. 오라버니는 성주목사(星州牧使)를 지낸 권주(權輳)이며, 언니는 정수의(丁守義)의 처이다. 성종과의 사이에서 1남을 낳았는데, 바로 전성군(全城君) 이변(李忭)이다.
[성종의 후궁]
1471년(성종 2) 권숙의(權淑儀)는 금성현령을 지낸 아버지 권수와 한가구의 딸인 어머니 청주 한씨(淸州韓氏)의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479년(성종 10) 성종이 예조에 전교한 것에 따라 숙의(淑儀)의 예(例)로 궁에 들어갔다.[『성종실록(成宗實錄)』 10년 9월 28일] 그리고 이듬해인 1480년(성종 11) 숙의에 봉해졌다.[『성종실록』 11년 1월 19일] 권숙의는 성종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숙의로 있다가, 성종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귀인(貴人)으로 진봉되었다.[『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6 「성종조고사본말(成宗朝故事本末)」]
[묘소와 후손]
권숙의의 무덤은 경기도 장단군 진동면 하포리에 있다.
권숙의는 성종과의 사이에 1남을 두었는데, 1남인 전성군은 권건(權健)의 딸인 단양군부인(丹陽郡夫人)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결혼하였다. 이변은 부인 안동 권씨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못하여 성종과 홍숙의(洪淑儀)의 4남인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의 차남인 광천군(廣川君) 이수기(李壽麒)를 양자로 맞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