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영혜옹주(永惠翁主)

서지사항
항목명영혜옹주(永惠翁主)
용어구분인명사전
분야왕족
유형인물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자료문의 연락처: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총론]
[1858년(철종 9)~1872년(고종 9) = 15세]. 조선의 제 25대 임금인 철종(哲宗)의 딸로 옹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1866년(고종 3) 신정왕후(神貞王后)에 의해 숙의(淑儀)에 봉해진 범숙의(范淑儀)이다. 부마는 반남 박씨(潘南朴氏) 금릉위(錦陵尉) 박영효(朴泳孝)이다.

[출생과 사망]
1858년(철종 9) 영혜옹주(永惠翁主)는 철종과 범숙의의 1녀로 태어났다. 1866년(고종 3) 9살 되던 해에 어머니 궁인 범씨는 숙의로 봉해졌고, 옹주는 영숙옹주(永淑翁主)로 봉해졌다가 영혜로 바꾸어 봉작되었다.[『고종실록』 3년 2월 13일],[『고종실록』 3년 2월 13일]

1871년(고종 8) 고종은 영혜옹주의 부마를 간택하기 위해 12세부터 14세까지의 남자의 혼인을 금지하였고, 사조(四祖)에 현관(顯官)이 없는 사람과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을 제외한 명단을 바치라고 하였다.[『고종실록』 8년 12월 22일] 한 달 후 영혜옹주의 부마 간택을 행해진 결과 박원양(朴元陽)의 아들 박영효(朴泳孝)가 간택되었다.[『고종실록』 9년 1월 26일],[『고종실록』 9년 2월 22일] 이어 박영효는 금릉위에 봉해졌다으며, 두 달 후 영혜옹주는 박영효의 혼인이 이루어졌다.[『고종실록』 9년 2월 22일],[『고종실록』 9년 4월 13일]

그러나 영혜옹주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종실록』 9년 7월 4일] 후에 고종은 박영효에게 집 한 채를 내리고 정1품 종친의 예로 녹봉을 주었다.[『고종실록』 44년 6월 23일] 1913년(순종 6) 순종은 영혜옹주의 면례(緬禮)에 장수금(葬需金) 1,000원(圓)을 박영효에게 주었다.

영혜옹주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에 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純祖實錄)』
■ 『순종실록(純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지두환, 『철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9.

■ [집필자] 정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