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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성종은 혜숙옹주를 하가시키면서 시아버지인 신종호에게 예(禮)를 가르치도록 당부하였다. 혜숙옹주가 궁궐 안에서 자라 더러 귀한 것을 믿고 교만한 폐단이 있을 것이라며, 반드시 어렸을 때부터 예를 알아서 습관이 몸에 배어 성품이 된 후에야 부도(婦道)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부탁하였던 것이다.[『성종실록』 21년 4월 15일] 그러면서 성종은 혜숙옹주에게 노비 70구와 전지(田地) 10결을 내려 주었다.[『성종실록』 21년 8월 6일]
부마 신항은 연산군(燕山君) 대이던 1504년(연산군 10) 임숭재(任崇載)의 모함으로 자급이 거두어지면서 궁궐 출입이 금지되었다.[『연산군일기』 10년 12월 18일] 이에 혜숙옹주 또한 궁에서 베푸는 연회의 참석이 금지되기도 하였다.[『연산군일기』 12년 8월 5일] 이후 신항은 두문분출하다가 1507년(중종 2) 31세의 나이로 혜숙옹주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중종실록』 2년 2월 21일]
[묘소와 후손]
혜숙옹주의 묘소는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74번지에 있다. 부마 신항의 묘소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1986년에 의정부시 향토 유적 제7호로 지정되었다.
혜숙옹주는 신항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모두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신항의 4촌 동생인 신함(申涵)의 아들 신수경(申秀涇)을 계후자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