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1453년(단종 1) 숙신옹주가 세상을 떠나자, 단종은 부의(賻儀)로 쌀과 콩 각각 1백 석과 종이 1백 50권, 포(布) 40필을 내려 주었다.[『단종실록』 1년 2월 8일]
한편 1401년(태종 1) 태조는 숙신옹주를 위해 「숙신옹주가대사급성문(淑愼翁主家垈賜給成文)」이라는 성문을 만들어 주었다. 67세의 고령이던 태조가 어린 딸을 옹주로 봉하고, 옹주를 위해 택지와 집을 지정하여 그 자손이 영구히 거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1969년 보물 제515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묘소와 후손]
숙신옹주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楊洲市) 양주읍(楊洲邑) 산내면(山內面)에 있다.
숙신옹주는 홍해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1남은 홍덕생(洪德生)이고, 2남은 홍형생(洪亨生)이며, 3남은 홍이생(洪利生)이다. 1녀는 황계조(黃繼祖)와 결혼한 홍옥생(洪玉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