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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389년(고려 창왕 1)~1455년(단종 3) = 67세]. 조선 제 3대 임금인 태종(太宗)의 딸로 공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이다. 부마는 평양 조씨(平壤趙氏)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대림(趙大臨)이다. 세종(世宗)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출생 및 혼인 생활]
경정공주(慶貞公主)는 조선이 개국하기 전인 1389년(창왕 1) 태종 이방원(李芳遠)과 원경왕후의 4남 4녀 가운데 차녀로 태어났다.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명(明)나라에서 통혼을 요구해 오자 이를 피하기 위하여 태종은 1403년(태종 3) 경정공주와 조준(趙浚)의 아들 조대림의 혼인을 서둘러 진행하였다. 당시 조대림은 모친상을 당한 지 4달밖에 되지 않아 상중에 있었기 때문에 대간(臺諫)에서는 다소 반대가 있었으나, 태종은 민무구(閔無咎)를 통해 이 혼인을 주장하게 하여 성사시켰다.[『태종실록』 3년 9월 16일]
한편 1408년(태종 8) 호군(護軍)목인해(睦仁海)가 경정공주의 부마 조대림이 역모를 꾀하려고 하였다며 고발하였다. 목인해는 관노(官奴) 출신으로 경순공주(慶順公主)의 부마 이제(李濟)의 가신이었다가 이제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태종을 섬겨 호군에 봉해진 인물이었다. 그 부인은 경정공주의 부마 조대림 집의 종이었는데 목인해는 자주 부마 조대림의 집을 드나들다가 어린 조대림을 이용하여 부귀(富貴)를 도모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조대림에게는 도적을 잡아야 한다며 군사를 일으키게 한 후 역모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조대림이 역모를 일으키려 한다는 소식을 사전에 들은 태종은 결국 조대림을 붙잡아 순금사(巡禁司)에 감금하였는데, 의문을 품은 황희(黃喜)가 목인해 등을 신문한 끝에 이 고발이 무고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조대림은 무사할 수 있었다.[『태종실록』 8년 12월 5일] 한편 부마 조대림은 1422년(세종 4) 평양부원군에 봉해졌다.
경정공주는 부마 조대림과의 사이에서 1남 4녀를 두었는데, 1남은 조무영(趙武英)이다. 1녀는 안진(安進)과 2녀는 김중엄(金仲淹)가 각각 혼인하였으며, 3녀는 조찬(趙瓚)과 4녀는 김중렴(金仲廉)과 각각 혼인하였다. 이 가운데 김중엄은 문종(文宗)의 첫 부인으로 폐비된 김휘빈(金徽嬪)의 오라버니이자 태종의 후궁인 김명빈(金明嬪)의 조카이다. 또한 경정공주와 김중엄의 외손녀는 단경왕후(端敬王后)의 어머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