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총론]
[?~1407년(태종 7) = ?]. 조선 제 1대 임금인 태조(太祖)의 딸로 공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신덕왕후(神德王后)이다. 부마는 성주 이씨(星州李氏) 흥안군(興安君)이제(李濟)이다. 친동생은 무안대군(撫安大君) 이방번(李芳蕃)과 의안대군(宜安大君) 이방석(李芳碩)이다. <제 1차 왕자의 난> 때 두 동생과 남편을 잃은 후 여승이 되었다.
[출생 및 혼인 생활]
태조와 신덕왕후의 2남 1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부마 이제(李濟)는 고려 말 권신이었던 이인임(李仁任)의 동생 이인립(李仁立)의 아들로 조선 개국 후 그 공을 인정받아 개국 공신에 봉해졌다.[『태조실록』 1년 8월 20일] 그리고 태조는 세자로 막내아들인 신덕왕후 소생인 의안대군 이방석을 세웠는데, 조선 개국에 공이 있던 신의왕후(神懿王后) 소생의 배다른 형들은 이에 대하여 불만을 품었다.[『태조실록』 1년 8월 20일] 그리하여 1398년(태조 7) 이방원(李芳遠)을 중심으로 한 신의왕후 소생 왕자들이 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신덕왕후의 소생 왕자들이 모두 숙청당하였다. 이때 경순공주는 부마 이제에게 함께 이방원의 집에 간다면 살 수 있다며 간청하였으나, 이제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으로 들이 닥친 군사들이 부마 이제를 살해하였다.[『태조실록』 7년 8월 26일]
한편 부마 이제는 1421년(세종 3) 태상왕이던 태종의 뜻에 따라 신원되어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세종실록』 3년 11월 9일]
[후손]
경순공주와 부마 이제 사이에는 자손이 없었는데, 1438년(세종 20) 세종이 부마 이제의 동생 이발(李潑)의 아들 이윤(李潤)을 그 후사로 삼고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에게 하사하였다가 회수한 공신전과 노비만큼 새로운 공신전과 노비를 하사하였다.[『세종실록』 20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