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총론]
[1511년(중종 6)~1531년(중종 26) = 21세]. 조선 제11대 왕인 중중(中宗)의 딸로 공주. 어머니는 중종의 계비(繼妃)로,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윤여필(尹汝弼)의 딸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다. 친동생은 제12대 왕인 인종(仁宗)이며, 배다른 동생으로는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아들인 제13대 왕 명종(明宗)이 있다. 연안 김씨(延安金氏) 김안로(金安老)의 아들인 연성위(延城尉) 김희(金禧)와 결혼하였다.
21살이 되던 1531년(중종 26) 세상을 떠났으며, 그해 10월 효혜공주의 부마인 김희도 세상을 떠났다.[『중종실록』 26년 4월 20일],[『중종실록』 26년 10월 10일] 한편 효혜공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 동생인 인종은 너무 슬퍼하다 병을 얻을 정도였다.[『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9 「인종조고사본말(仁宗朝故事本末)」]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에 위치한다.
효혜공주는 딸 하나를 두었는데, 파평 윤씨(坡平尹氏) 윤원로(尹元老)의 아들 윤백원(尹百源)과 혼인한 김선옥(金善玉)이다. 윤백원은 문정왕후의 조카이기도 하였는데, 숙부 윤원형(尹元衡)이 아버지 윤원로를 숙청하자 그에 대한 원한을 품었다. 그리하여 1563년(중종 18) 이량(李樑) 등과 함께 사화를 일으켜 사림(士林)을 몰아내는 사화(士禍)를 계획하였으나 발각되고 말았다. 이에 관련자들 모두 멀리 유배를 갔으나, 윤백원은 효혜공주의 유일한 사위라는 문정왕후의 뜻에 따라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유배를 갔다.[『명종실록(明宗實錄)』 18년 10월 18일],[『명종실록』 20년 4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