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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31년(세종 13)~1455년(단종 3) = 25세.] 조선 초기 세종~단종 때 활동한 왕자. 세종(世宗)의 서출 10남 2녀 중에서 제 6왕자. 봉작(封爵)은 수춘군(壽春君)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주거지는 서울이다. 어머니 양혜빈(楊惠嬪)는 청주 양씨(淸州楊氏)로서 남평 현감(南平縣監) 양경(楊景)의 딸인데, 단종을 맡아서 양육하였다. 양혜빈이 낳은 3형제 중에서 둘째아들인데, 동복형이 한남군(漢南君) 이어(李*)이고, 동복아우가 영풍군(永豊君) 이전(李瑔)이다.
[세종 ~단종 시대 활동]
1431년(세종 13) 7월 10일에 출생하여 1437년(세종 19) 12월 나이 7세 때에 수춘군에 봉해졌다. 1441년(세종 23) 7월 23일 세자빈 권씨가 단종을 낳고 돌아가자, 세종은 양혜빈의 어머니 이씨를 봉보부인(奉保夫人)으로 삼아 단종을 기르게 했고, 양혜빈에게 단종을 맡아서 보육하라고 명하였다. 1443년(세종 25) 세종이 소헌 왕비와 더불어 충청도 온양군 온천에 거둥할 때,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와 함께 도성에 남아 경복궁을 수궁(守宮)하였다. 1445(세종 27) 외조부 현감 양경이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1452년 5월 문종이 승하하자, 의정부에서는 양혜빈이 세자를 보호하여 기른 은혜가 있다하여 대내(大內)에 들어와 단종을 보호하도록 하니, 양혜빈이 대내에 들어와서 한 동안 내정(內政)을 주관하였다. 그해 6월 11일과 7월 9일 수양대군(首陽大君)과 강맹경(姜孟卿)이 양혜빈이 궁중을 오로지하므로, 문종의 후궁 홍귀인(洪貴人)의 작위를 높여 궁중의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8월 7일 홍귀인을 숙빈(肅嬪)로 삼고 궁중의 일을 양혜빈 대신 도맡도록 하였다. 홍숙빈의 어머니 윤씨는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와 사촌 자매였다.
1453년(단종 1) 10월에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났다. 어머니가 단종의 양육자였기 때문에, 수춘군 이현은 세조의 즉위에 반대하였다. 이에 수양대군 일파는 양혜빈의 아들들을 제거 대상으로 삼았던 것 같다. 1455년(단종 3) 영천위(鈴川尉) 윤사(尹師路)가 수양대군에게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영풍군이 수상하다고 아뢰면서, 금성대군과 수춘군이 작당하여 한 패거리라고 공격하였다. 『단종실록』을 보면, 수춘군이 병을 앓았을 때, 금성대군의 집에서 수춘군이 병이 낫도록 기도하였다고 하였고, 또 금성대군과 양혜빈이 서로 손을 잡고 결탁하였다고도 하였다.[『단종실록』 단종 3년 3월 21일] 수춘군은 그 해 6월 5일 졸하였는데, 향년이 25세였다.
1455년 윤6월 11일 세조가 즉위하자, 양혜빈, 한남군 이어, 영풍군 이전, 금성대군, 박상궁이 함께 역모를 꾀하였다고 유배를 보냈다. 청풍(淸風)으로 유배되었던 어머니 양혜빈은 11월 9일 교수형을 당했다.
[묘소와 후손]
시호는 안도(安悼)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왕릉골에 있는데, 부인 영일 정씨(迎日鄭氏)의 무덤과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부인 영일 정씨는 통례문(通禮門) 부지사(副知事) 정자제(鄭自濟)의 딸인데, 남편 수춘군 이현이 죽자,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 성종 시대 정업원(淨業院) 주지로 있었다. 1녀를 두었는데, 지순준(池順竣)의 처가 되었다. 수춘군 이현은 후사가 없었으므로, 김신빈(金愼嬪) 소생의 밀성군(密城君)이침(李琛)의 3남 수안군(遂安君) 이상(李*)을 후사로 삼았다.
정업원은 흥인문(興仁門) 밖 숭인동에 있는데, 수춘군의 부인 영일 정씨가 주지로 있었으므로, 단종의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가 왕비에서 쫓겨난 뒤에 이곳에서 지냈다. 영조 때 정업원에 비(碑)를 세웠는데, 영조가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곧 정업원 옛터란 다섯 글자를 친히 써서 비를 세우도록 하였고, 또 영조는 ‘동망봉(東望峯)’ 세 글자를 친히 써서 정업원에서 마주보이는 봉우리의 돌 위에 새기도록 하였는데, 그 봉우리에 정순왕후 송씨가 올라가서 단종의 귀양간 영월(寧越)을 바라보면서 82세까지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