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이방연(李芳衍)

서지사항
항목명이방연(李芳衍)
용어구분인명사전
분야왕족
유형인물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총론]
[생몰 연대 미상]. 고려 말 우왕(禑王)~조선 태조 때 활동한 왕자. 태조(太祖)이성계(李成桂)의 제 6 왕자. 봉작(封爵)은 덕안대군(德安大君), 문안군(文安君)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어머니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는 안변한씨(安邊韓氏) 한경(韓卿)의 딸이다. 이방우(李芳雨), 이방과(李芳果), 이방의(李芳毅), 이방간(李芳幹), 이방원(李芳遠)의 동복 동생이다. 1392년(태조 1) 여러 왕자를 군(君)으로 봉할 때 6남 이방연(李芳衍)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봉호를 내리지 않았다. 제 5남 태종(太宗)이 1367년(공민왕 16) 생인 것에서 미루어 3~4년 뒤인 1369년(공민왕 18)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15세 이전에 혼인하여 딸 둘을 낳았고, 1385년(우왕 11) 고려조의 문과(文科)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 박사(博士)에 이르렀으나, 얼마 후에 죽었다.

[고려 우왕~조선 태종 때의 활동]
그가 공민왕 때 10세 미만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주로 우왕 때 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385년(우왕 11)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곧 죽었다고 한다.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권1에, 덕안대군은 신의왕후의 소생이고 고려 문과 성균관 박사였으며, 일찍 죽었고, 대군(大君)으로 추증했다고 하였다.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조 2년 9월 18일 조에 덕안대군이 일찍 죽었다는 것과 함께 원윤(元尹)에 증직되었다는 기사가 있다.

[추증과 후손]
1404년(태종 4) 친형인 태종이 즉위한 뒤, 1400년(태종 9) 문안군에 추증되었다.(『태종실록(太宗實錄)』참고.) 1872년(고종9) 12월 4일에 덕안대군으로 추증되었다.(『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 9년 12월 4일 조 참고.) 이 해 영종정경(領宗正卿)에 추증되었다. 그는 딸 둘만을 낳아 후사가 없었다. 1900년(고종 37)에 이르러 태조의 4남 이방간의 16대손인 이정효(李貞孝)에게 명하여 덕안대군의 제사를 받들도록 명했다.

부인 여흥민씨(驪興閔氏)는 민제(閔霽)의 딸로, 태종 이방원의 처인 원경왕후(元敬王后)와는 자매간이다. 2녀를 두었는데, 1녀는 찬성사(贊成事) 이저(李佇)의 처가 되었고, 2녀는 청원군(靑原君) 심정(沈淀)의 처가 되었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계보(璿源系譜)』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집필자] 윤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