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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64년(세조 10)~1493년(성종 24) = 30세]. 조선 전기 성종 때에 활동한 문신·학자. 행직(行職)은 사간원(司諫院)헌납(獻納)이다. 자는 희인(希仁)이고, 호는 눌재(訥齋)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인데, 아버지는 예조 참의(參議)박미(朴楣)이고, 어머니 진주강씨(晋州姜氏)는 강석덕(姜碩德)의 딸이다. 증조부는 교서관(校書館)정자(正字)박절문(朴切問)이고, 조부는 의정부(議政府) 좌참찬(左參贊) 밀산군(密山君) 박중손(朴仲孫)이다.
[성종 시대 활동]
1477년(성종 8) 나이 14세에 성균관(成均館)에서 유학하였다. 1480년(성종 11) 사마시(司馬試)에 진사(進仕)로 합격하고, 1483년(성종 14) 약관(弱冠)에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홍문관(弘文館)정자(正字)가 되었다가 그 뒤 설경(說經)이 되었다. 1486년(성종 17)에 문과(文科)중시(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고, 그 뒤 박사(博士)가 되었다가 1489년(성종 20)에 수찬(修撰)이 되었다. 1490년(성종 21)에 홍문관 교리(校理)가 되었는데 시독관(侍讀官)을 겸하였다. 1491년(성종 22) 5월에 사간원 헌납이 되었다. 1492년(성종 23)에 천문(天文)과 산학(算學)을 익히도록 하는데 선발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그가 재주와 명성을 다 갖추었다고 부러워하였는데, 1493년(성종 24) 가을에 향년 30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눌재유고(訥齋遺稿)』가 있다.
[성품과 일화]
박증영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화순하고 평소에 묵중하여 때가 되어야 말을 하였는데, 이렇게 언행이 차분하여 노성한 성인(成人)과 같이 이름이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이 모두 그의 그릇을 알았다고 한다. 그는 문장을 배워 근본이 매우 두터웠고 보폭도 원대하여, 필경에는 나라를 빛낼만한 솜씨라는 칭찬을 들었다. 또 그는 강의(剛毅)하고, 정직한 기질이 있었으며, 매우 청렴하였다고 한다.
[제향과 애사]
충청북도 청주(淸州)의 국계서원(菊溪書院)과 충청남도 금산(錦山) 덕산사(德山祠)에 제향(祭享) 되었다. 김일손(金馹孫)이 지은 애사(哀辭)가 전한다. 부인은 죽산박씨(竹山朴氏)는 현감(縣監) 박영달(朴榮達)의 딸인데, 1남 박훈(朴薰)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