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총론]
[1498년(연산군4)∼1564년(명종19) = 67세]. 조선 중기 중종~명종 때의 문신. 자는 사우(士遇)이고, 호는 묵암(默菴)이다. 본관은 안동이고, 거주지는 성주(星州)이다. 관찰사 권희맹(權希孟)의 아들이며 권응창(權應昌)의 형이고, 여한경(呂漢卿)의 외손자이다.
[명종 시대의 활동]
1547년(명종2)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으로 재직 중에, <양재역(良才驛)의 벽서(壁書)>에 “여주(女主: 문정왕후)가 정권을 잡으니, 이기(李芑) 등이 권력을 잡고 농단한다.”라고 비난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기 등은 봉성군(鳳城君) 이완(李岏) · 이언적(李彦迪) · 노수신(盧守愼) · 유희춘(柳希春) 등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권응정과 권응창 형제도 같은 당류라고 탄핵하고 귀양보냈다. 처음에는 유배지를 전라도 강진(康津)으로 정하였다가, 나중에 함경도 단천(端川)으로 옮겨, 6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였다. 1553년(명종8) 유배 생활에서 풀려나 고향 성주로 돌아왔다. 1557년(명종12) 경주부윤(慶州府尹)에 기용되었고, 1561년(명종16) 안동부사(安東府使)를 역임하였다.
[사후의 묘소와 비문]
묘소는 경상도 성주 오도종리(吾道宗里)에 있는데, 박충원(朴忠元)이 지은 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