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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20년(광해군12)∼1671년(현종12) = 52세]. 조선 중기 효종~현종 때 활동한 문신. 자는 정숙(正叔)이고, 호는 육유당(六有堂)이다. 본관은 안동으로, 선산부사(善山府使) 권성원(權聖源)의 아들이고, 송시열(宋時烈)의 제자 권상하(權尙夏) · 권상유(權相遊)의 아버지이다. 또 강선여(姜善餘)의 외손자이고, 이춘원(李春元)의 손녀사위이다.
1660년(현종1) 6월 동지사 정치화(鄭致和)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효종이 돌아간 다음에 자의대비(慈懿大妃: 장렬왕후)의 복제(服制)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서인(西人)의 선봉장으로서 반대파 윤선도(尹善道) 등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게다가 양사에 있을 때에는 직함을 부르지 않고 사람 이름을 불러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탄핵을 당하여 파직되기도 하였고,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또 외직으로 쫓겨나 충청도도사(忠淸道都事) · 황해도도사(黃海道都事) · 고산찰방(高山察訪) · 강릉부사(江陵府使)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무덤과 사평]
묘소는 충청도 청풍(淸風) 황강(黃江)의 북쪽 선영(先塋)에 있고,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묘갈명(墓碣銘)이 남아 있다. 그는 여가에 서재를 깨끗이 청소하고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읽으며 스스로 즐겼다고 한다. 특히 송(宋)나라 유학자(儒學者) 장재(張載)의 수양하는 여섯 가지 방법을 실천하기 위하여 서당의 이름을 ‘육유당(六有堂)’이라 하고, 이것을 자호(自號)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