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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54년(명종9)~1593년(선조26) = 40세]. 조선 중기 선조(宣祖) 때 활동한 의병(義兵). 자는 도충(道沖)이고, 호는 준봉(隼峯)· 부봉(阜峯)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인데, 전라도 의병장(義兵將) 고경명(高敬命)의 맏아들이고 의병장 고인후(高因厚)의 형이다.
[선조 시대 활동과 임진왜란]
1577년(선조10) 24세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成均館)전적(典籍)에 임명되었고, 감찰(監察)로 옮겼다가 또 예조 좌랑으로 승진하여, 지제교(知製敎)를 겸임하였다. 1588년(선조21) 임피현령(臨陂縣令)으로 임명되었으나, 아버지의 전력(前歷)으로 인하여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났다. 1592년(선조25)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아버지 고경명과 아우 고인후와 함께 전라도에서 의병을 모집해서 왜적과 싸워 전라도를 지켜냈다.
마침 왜적이 금산(錦山)을 점령하여 전주(全州)의 형세가 급박하게 되자, 고경명의 의병은 금산에서 방어사(防禦使) 곽영(郭嶸)과 함께 군사를 좌·우익(左右翼)으로 나누어 싸웠는데, 첫날은 승리하였으나 다음날 방어사의 관군이 무너지자 의병도 따라서 무너졌다. 고종후가 탄 말이 가시덤불에 걸려 거꾸러지는 바람에 아버지 고경명과 아우 고인후를 순절하는 현장에서 그들을 구하지 못하였다. 이후 전장터에 들어가서 아버지와 아우의 유체(遺體)를 수습하여 몰래 금산 산중에 묻어두었다가, 40여 일만에 다시 찾아서 고향 광주(光州) 창평(昌平)에 장사지냈다.
[제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순직]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1593년(선조26) 6월 경상도 진주성(晉州城) 싸움에 참여하였다. 일본의 카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코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의 연합군 10만 대군이 전년도 김시민(金時敏)과 곽재우(郭再祐)에게 패배한 것(제1차 진주성 싸움)을 설욕하려고 진주성으로 다시 쳐들어왔다. 이에 대항하여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 최경회(崔慶會), 충청병사(忠淸兵使) 황진(黃進), 김해부사(金海府使) 이종인(李宗仁), 복수대장(復讎大將) 고종후 등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진주성으로 집결하여 왜적과 싸웠다. 고종후는 진주성의 형세가 위급함을 보고 의병들 가운데 자기 집으로 가고자 하는 자를 모두 놓아서 보냈는데,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자가 4백 여 명이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진주부사(晉州府使) 대신 총지휘를 맡은 창의사 김천일이 명(明)나라 총병(摠兵) 유정(劉綎)에게 서한을 보내어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진주성이 왜병에게 포위를 당한 지 9일째가 되어도 응원군은 오지 않았고, 의병장 황진·김준민(金俊民) 등이 잇달아 전사하였다. 1593년 6월 29일 성이 함락되기 직전 고종후는 김천일·최경회와 함께 진주 남강(南江)에 몸을 던져서 죽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40세였다. 6~7만 명의 진주성 사람들이 거의 왜적에게 죽음을 당하였고, 그 일부는 강물에 투신자살하였다.
[추증과 성품]
고종후의 유체(遺體)를 진주 남강에서 찾지 못하여 묘소를 만들지 못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나라에서 그를 도승지(都承旨)에 추증하였으며, 왕세자(王世子) 광해군(光海君)도 별도로 예관(禮官)을 보내어 치제(致祭)하였다. 그 뒤에 정문(旌門)을 세우고, 고경명의 ‘포충사(褒忠祠)’에 함께 배향하였다. 숙종(肅宗) 때 시호를 ‘효열(孝烈)’이라 내려주었다. 남구만(南九萬)이 지은 시장(諡狀)이 남아있다.(『약천집(藥泉集)』 권23 「증이조판서고공청시행장(贈吏曹判書高公請諡行狀)」)
고종후는 타고난 자질이 순수하고 정직하였다. 그의 문장은 준일(俊逸)하고 경발(警發)하며, 지필(紙筆)을 잡으면 지체 없이 글을 써내려갔다. 의병을 일으킬 때 그가 쓴 격문이 사방에 전달되자 그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