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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왕이 행차할 때 타는 왕의 가마, 혹은 노부 등급 가운데 가장 큰 등급을 지칭하는 말.
[개설]
왕의 의장제도인 노부(鹵簿)에는 대가(大駕), 법가(法駕), 소가(小駕)의 세 등급이 있다.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에 따르면 대가노부는 조칙(詔勅)을 맞이할 때나, 종묘·사직에 제사할 때 쓰이는 가장 큰 형식의 노부이다. 대가노부에 배치하는 의물은 전정(殿庭)에서의 대장(大仗)과 같으며, 대가의장(大駕儀仗)이라고 한다. 이러한 노부 등급상의 명칭 이외에 행차할 때 세자의 가마 등과 구분하기 위해 왕의 어가를 ‘대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대가, 법가 등 왕의 노부 등급은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완전히 새롭게 정해졌다. 하지만 의장기의 구성이나 의장물의 종류가 일부 겹쳤는데, 이는 의장물이 군사용 무기에서 연원하였다거나 용이나 봉황 등 의장기에 쓰인 상징이 왕권의 신성성을 드러내기 위한 의미로서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 「오례」를 거쳐 『국조오례의서례』「노부」조에 왕의 세 등급의 노부가 규정된 이후 대한제국 시기 황제국 의장 제정 이전까지 이어졌는데, 시위군 제도의 변화에 따른 군사 배치의 차이를 제외하고 의장의 구성에는 변화가 없었다.
[형태]
행렬의 가장 앞에는 어가행렬을 이끄는 인원[도가(導駕)]에 이어 선상군병이 선다. 선상군과 행렬 뒤의 후상군의 구성은 각 시기별 군제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세종대에는 대가노부에 선후상군 6,000명이 배치되었다. 대가노부에 진열된 의장은 홍개(紅盖), 홍문대기(紅門大旗), 주작기(朱雀旗), 백호기(白虎旗), 청룡기(靑龍旗), 현무기(玄武旗), 황룡기(黃龍旗), 육정기(六丁旗), 백택기(白澤旗), 삼각기(三角旗), 각단기(角端旗), 용마기(龍馬旗), 현학기(玄鶴旗), 백학기(白鶴旗), 천하태평기(天下太平旗), 표골타자(豹骨朶子), 웅골타자(熊骨朶子), 영자기(令字旗), 가구선인기(駕龜仙人旗), 고자기(鼓字旗), 금자기(金字旗), 가서봉(哥舒棒), 금등자(金鐙子), 은장도(銀粧刀), 금장도(金粧刀), 주작당(朱雀幢), 백호당(白虎幢), 청룡당(靑龍幢), 현무당(玄武幢), 벽봉기(碧鳳旗), 군왕천세기(君王千歲旗), 은교의(銀交椅), 각답(脚踏), 주칠교의(朱漆交椅), 은관자(銀灌子), 은우자(銀盂子), 은립과(銀立瓜), 금립과(金立瓜), 은횡과(銀橫瓜), 금횡과(金橫瓜), 은작자(銀斫子), 금작자(金斫子), 한(罕), 필(畢), 모절(旄節), 정(旌), 은월부(銀鉞斧), 금월부(金鉞斧), 봉선(鳳扇), 작선(雀扇), 용선(龍扇), 청개(靑盖), 청양산(靑陽繖), 수정장(水晶杖), 금월부(金鉞斧), 홍양산(紅陽繖), 청선(靑扇), 후전대기(後殿大旗), 금(金), 고(鼓) 등이다. 왕의 연여(輦輿)를 의장의 중간에 배치하는데, 소여(小輿)가 앞에, 소연(小輦)이 뒤에 선다. 왕이 직접 타는 대연(大輦)은 의장에 이어 등장하며 좌우로 여섯 겹의 호위가 가마를 에워싼다. 가마의 뒤로도 협연군사가 서서 폐쇄된 진을 형성하며 그 뒤로 각종 수행인원과 후상군병이 따른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강제훈, 「조선전기 국왕 의장제도의 정비와 상징」, 『사총』77, 2012.
■ 김지영, 「조선후기 국왕 행차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